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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감독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강하게 키운다"는 말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었다.
이형종은 지난 2010년 8월 임의탈퇴됐다. 프로에 입단한 뒤 채 3년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2008년 1차 지명으로 LG 유니폼을 입은 이형종의 프로 생활은 수술과 재활로 시작됐다. 2년여간 재활에 매달린 뒤 1군 데뷔전이었던 2010년 5월16일 잠실 롯데전에서 첫 승을 신고했으나, 두번째 등판 이후 또다시 팔꿈치 통증을 호소했다.
당시 이형종은 소위 말하는 '문제아'였다. 스프링캠프 때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개막 엔트리에 들지 못하자 박종훈 감독을 인터넷상에서 공개비난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구단은 준비된 재활프로그램에 따르고 군입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심리치료와 특별 휴가까지 주면서 이형종의 마음을 돌리려 애썼다. 어린 선수의 치기 어린 행동이라 보고, 어르고 달래준 것이다. 하지만 이형종은 야구를 그만두겠다며 버텼고, 결국 구단도 포기를 선언했다.
2경기서 1승 평균자책점 6.52. 이형종의 프로 통산 성적이다. LG는 4억3000만원이라는 거액의 계약금을 안긴 유망주를 쉽게 포기할 순 없었다. 팬들 역시 데뷔 첫 선발 등판에서 보여준 그의 꿈틀대는 150㎞짜리 강속구를 잊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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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감독, "신고선수처럼 피나는 노력해라"
사실 지난해 말부터 이형종은 복귀 의사를 내비쳐왔다. 시즌 중에도 말이 나왔다. 재수술을 받은 뒤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하지만 구단은 흔쾌히 이형종을 받아줄 수 없었다. 다른 선수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있었다. 제발로 나간 선수에게 먼저 손을 내민다? 기존 선수들이 갖는 상대적 박탈감은 극심할 수 밖에 없었다. 시즌 중이란 것도 감안했다.
이형종은 최근에야 구리 재활조에 합류했다. 아직 임의탈퇴 처분이 풀린 건 아니지만, 운동하는 태도를 지켜보고 최종 결정하겠다는 생각이다. 임의탈퇴 신분이기에 그라운드로 복귀하기 위해선 무조건 LG로 돌아와야만 한다. 본인 역시 절실함을 갖고 구단에 고개를 숙였다.
김기태 감독의 불편한 심기 역시 조금은 가라앉았다. 김 감독은 이형종이 "야구를 못 하겠다"고 선언할 때 2군 감독이었다. 당시 직접 면담을 진행하면서 이형종에게 혀를 내두른 장본인이다.
김 감독은 언론에서 이형종에 대한 보도가 너무 앞서나가는 게 아니냐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사실 롯데전에서 한 번 보여준 게 전부 아닌가. 이러다 복귀 전부터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건 아닌가 걱정된다. 지금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는 다른 선수들도 많다"고 밝혔다. 복귀 전부터 쏠린 관심으로 선수단에 위화감이 조성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그래도 이젠 선수 본인이 절실함을 갖고 있다는 얘길 들었어요." 그가 구단과 상의 끝에 이형종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자고 결정한 이유였다. '절실함'. 어려움이라곤 겪어보지 못한 어린 유망주에게 꼭 필요한 마음가짐이었다.
김 감독은 "프로야구 선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자기 마음대로 들어왔다 나갔다 해서 되겠나. 기회를 잡고 싶어도 도전조차 하지 못하는 선수가 태반"이라고 말했다. 강한 어조는 계속 됐다. 그는 "아무리 150~160㎞를 던진다고 해도 소용없다. 프로는 프로다. 신분은 구단에서 결정하겠지만, 복귀 후에도 신고선수처럼 피나는 노력을 해야할 것"이라고 했다.
정말 신고선수가 될 지는 구단에서 정할 일이다. 6월부터 정식선수 전환이 가능하기에 신고선수로 복귀할 가능성도 있다. 김 감독이 굳이 신고선수를 언급한 건 그만한 '각성'을 촉구한 것이다. 밑바닥부터 발버둥치며 피나는 노력을 하는 연습생들의 마음가짐을 본받으란 것이다.
김 감독은 이형종의 복귀 시점에 대해 "내년 여름 이후에 올라와주면 고맙겠지만, 무조건 기회를 준다는 말은 아니다. 2군에서 트레이닝 파트, 코칭스태프에게 합격점을 받아야만 한다. 1군 복귀는 그 이후"라고 선을 그었다. 내년 시즌 전력의 '상수'가 아니란 말이다.
이형종의 미래, 결국 본인이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 김 감독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이형종 만큼은 강하게 키울 겁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