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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의 추억을 살려봐야죠."
한화 선수들은 김응용 감독(71)을 맞이한 지 40일이 넘었지만 좀처럼 말을 걸지 못한다.
워낙 큰 어르신인데다, 카리스마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어서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인 모양이다.
이는 김 감독도 인정하는 현실이다. 그래서 김 감독은 이태양(22) 조지훈(18) 김강래(18) 등 손자뻘 선수를 친구로 삼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그렇다고 김 감독이 외로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최측근이 코치진을 제외하고 김 감독을 가장 잘 아는 유일한 선수가 있기 때문이다.
최고참 외야수 강동우(38)다. 강동우는 김 감독과 기분좋은 추억을 안고 있다. 2002년 삼성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할때 김 감독의 가르침을 받았다.
삼성의 2002년 챔피언은 김 감독에게는 삼성에서 감독으로 재임하는 동안 유일한 우승이었다. 당시 강동우는 박한이-양준혁과 함께 막강한 외야진을 구성하며 우승에 큰 몫을 담당했다.
프로 데뷔 첫 해인 1998년 LG와의 플레이오프 도중 타구를 잡으려다가 펜스에 부딪혀 정강이뼈가 으스러지는 부상을 했던 강동우다.
이후 2년간 야구를 하지 못하다가 힘겹게 재활에 성공한 뒤 김 감독을 만나 새로운 야구인생을 시작했다.
그랬던 그가 2006년 두산으로 트레이드된 이후 6년 만에 김 감독과 재회했다. 더구나 신인 시절 '제2의 이종범'으로 불렸던 그는 이번에 진짜 이종범 코치까지 만나게 됐다.
이제 서서히 은퇴를 염두에 둬야 할 나이에 옛 스승을 다시 만났으니 각오가 새로운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서산구장에 진행중인 마무리 훈련에서 코칭스태프로부터 가장 호평을 받는 선수가 강동우다.
김 감독은 "방망이 잘 돌리고 있다. 2012시즌 후반부에 출전기회가 적어서 마음고생 좀 했겠지만 이제는 느끼는 바가 있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김 수석코치는 "서산 훈련에 참가한 선수 가운데 나이는 가장 많은데 가장 열심히 하는 선수가 강동우다"면서 "고참이 저렇게 모범을 보여주니 젊은 후배들에게 커다란 자극이 된다"고 한술 더 떴다.
강동우는 김 감독으로부터 직접 칭찬을 들은 적은 없다. 김 감독은 웬만해서 선수에게 직접 칭찬을 하거나 많은 얘기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훈련 도중 지나치다가 "요즘 열심히 하는 것 같아"라는 말 한마디 들은 게 전부다. 김 감독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면 백마디 칭찬을 들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고 베테랑 강동우가 김 감독으로부터 칭찬받고 싶어서 가장 열심히 훈련하는 게 아니다. 한화에서 부동의 톱타자로 군림하다가 올시즌에는 출전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했던 아쉬움을 털어내고 싶은 게 급선무다.
조카같은 후배들이 보고 있으니 대충할 수도 없다. 나이 핑계로 힘들다고 내색은 하지 못하고 배팅 훈련 1개라도 더 할 수밖에 없는 처지란다.
여기에 후배들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도 해야 한다. 삼성에서 4년간 김 감독의 가르침을 받았기에 누구보다 그 스타일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동우가 요즘 후배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얘들아, 감독님이 별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아도, 우리 훈련하는 모습 안보는 것 같아도 다 보고 계신다. 바짝 정신차려야 한다"는 것이다.
강동우는 "내년에도 야구인생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야구 잘해야 한다는 것 말고는 다른 사연이 없다"면서 "김 감독님을 다시 만났으니 10년전의 기분좋은 추억을 살리고 싶을 뿐"이라고 이를 악물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