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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이상 야구를 전문적으로 한 프로 선수도 돌덩이같은 야구공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면 무의식적으로 피하게 마련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맞으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다. 또 사구는 자칫 부상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어 화들짝 놀라며 그라운드에 나뒹굴 때도 있다.
그런데 삼성 4번타자 박석민(27)은 '본능'을 이겨냈다. 꿋꿋이 선 채로 왼쪽 엉덩이에 맞았다. 애당초 맞을 각오를 단단히 하고 타석에 들어섰을 때 가능한 일이다. SK 선발 윤희상의 몸쪽 직구가 박석민을 향해 날아갔다. 2-1로 앞선 6회말 1사 1루 상황이었다.
그는 이번 한국시리즈를 준비하면서 옆구리 통증 때문에 고생했다. 그래서 지난 19일부터 타격 훈련을 했다. 좀 늦었다. 타격감이 좋다고 볼 수 없었다. 게다가 한국시리즈 1차전은 박석민에게 약 20일만에 갖는 공식 경기였다. 그런 박석민의 방망이가 잘 돌아갈 리 없었다.
23일 삼성 타선의 핵인 대선배 이승엽은 이렇게 말했다. "사구를 맞더라도 1차전은 이길 것이다." 천하의 이승엽이 밝힌 각오에 후배들도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박석민은 평소에도 사구를 무서워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이번 시즌 27개의 사구를 맞았다. 사구 부문 1위에 올랐다.
몸무게 100㎏에 육박하는 그도 투수가 던진 공에 맞으면 아프다. 그런데 내색을 잘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집에 가서 소염제를 바르는 게 일이다. 사구를 맞으면 멍이 시퍼렇게 든다. 피멍이 1주일 이상 간 적도 있다. 가족들은 박석민의 멍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플 때가 많다.
그래도 박석민은 공을 피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는 다른 선수들보다 타석에서 홈플레이트 쪽으로 바짝 붙는 편이다. 그게 상대 투수와 포수를 압박한다. 당연히 박석민의 몸쪽으로 공을 붙일 경우 사구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한국시리즈 같은 큰 경기에선 선수들이 사구에 대처하는 자세가 달라진다. 맞고라도 나간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팀분위기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 사구를 피하지 않는 모습은 상대에겐 섬?한 위협을 주고, 동료들에게는 돌처럼 강한 의지를 일깨워준다. 과거 삼성이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테니스공을 이용해 사구를 피하지 않고 맞는 연습을 했을 정도였다.
박석민이 사구를 맞고 나갔지만 삼성은 6회 추가 득점을 올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중심 타자가 사구를 당당히 맞고 나갈 경우 팀 사기에 미치는 영향은 무척 크다.
맞고라도 이기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박석민의 사구 하나에 삼성 선수들은 정신적으로 강해지는 동시에 뭉칠 수 있다. 또 삼성팬들은 큰 박수로 선수들을 응원했다. 반면 SK에는 심적으로 큰 압박감을 주었을 것이다. 대구=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