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만의 사직 2연승, 롯데 '내집증후군' 완전 탈출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2-10-19 21:57


포스트시즌만 되면 기를 펴지 못한 롯데는 가을야구의 '열등생'이었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가을 무대에 올랐지만 한 번도 첫 번째 스테이지를 통과하지 못했다. 지난 1992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후 정상을 밟지 못했고, 1999년 이후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다. 최고 열성의 부산팬들은 그동안 롯데의 가을야구에 목이 말랐다.

팬들의 열정적인 응원이 부담이 됐을까. 롯데는 특히 포스트시즌만 되면 안방 사직구장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다. 이기고 있을 때도 실책이 나오면 질책을 쏟아내는 게 부산팬이다. 오랫동안 롯데는 안방 팬들 앞에서 주눅이 들어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런데 롯데가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비로소 새집증후군 보다 더 무섭다는 이른바 '내집증후군'을 완전히 극복했다.

롯데는 지난 12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준PO) 4차전에서 연장 10회까지 가는 피말리는 접전 끝에 4대3 역전승을 거뒀다. 1992년 9월 25일 삼성에 3대0으로 이긴 후 사직구장 준PO 8연패를 기록했던 롯데가 20년 만에 징크스에서 벗어난 것이다. 더구나 롯데는 이날 승리로 플레이오프(PO) 진출을 확정했다.

준PO 연패의 수렁에서 빠져나온 롯데는 19일 사직구장에서 벌어진 PO 3차전에서 SK를 4대1로 제압하고 다시 활짝 웃었다. 준PO 4차전에 이어 안방에서 2연승을 거둔 것이다. 포스트시즌에 롯데가 사직구장에서 연승을 거둔 것은 1995년 LG와의 PO 3,4차전에서 승리한 후 무려 17년 만의 일이다.

준PO 4차전 한 번의 승리로는 미심쩍었던 홈 승리를 두 번 연속 거둔 것도 크지만, 이날은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마치 사직구장이 롯데를 도우는 듯한 인상을 줬다. 많은 악재를 극복하고 따낸 홈구장 승리였다.

우선 선발 투수의 무게감이나 객관적인 전력을 볼 때 롯데의 열세가 예상됐던 경기였다. 롯데 선발 고원준은 지난 14일 준PO 4차전에 선발 등판해 2⅓이닝 동안 2점을 내주고 강판됐다. 정규시즌 8승3패(평균자책점 4.15)를 기록한 SK 선발 송은범이 3승7패(평균자책점 4.25)에 그친 고원준에 앞섰다. 이용훈과 사도스키가 부상으로 엔트리에 들지 못해 대신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간 고원준이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고원준이 5⅓이닝 3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한 반면, 송은범은 4이닝 3실점을 한 후 마운드를 내려왔다. 거기다 롯데는 왼쪽 무릎 근육통 때문에 특급 마무리 정대현을 가동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롯데의 내집증후군 완전 탈출을 증명하는 사건은 꼬리를 물었다. 롯데 수비는 갑자기 메이저리그급으로 진화했고, 강하기로 유명한 SK 수비는 뭔가에 홀린듯 헤맸다.

수비의 달인 SK 유격수 박진만이 3회 롯데 홍성흔의 지극히 평범한 타구를 가랑이 사이로 빠트렸다. 올해 정규시즌 57경기에서 실책 '0'을 기록했던 천하의 박진만이 가장 중요한 순간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SK는 올해 63개의 실책으로 팀 실책이 가장 적은 수비의 팀이다. 박진만의 실책으로 출루한 홍성흔은 쐐기를 박는 세번째 득점을 기록했다.

사직구장 '지신의 도움'은 이 뿐이 아니었다. 6회 2사 1루에서 롯데 문규현이 우익수쪽으로 플라이성 타구를 날렸는데, SK 조동화가 갑자기 나오다가 멈춰섰다. 그리고 잠시후 공은 조동화의 머리위를 넘어 펜스까지 굴러가 1타점 2루타가 됐다. 공이 사직구장 조명 불빛 속으로 들어가 조동화가 타구 방향을 놓친 것이다. 사직구장이 안방주인 롯데에 미소를 보내는 순간이었다.

SK와 롯데는 팀컬러가 대조적인 팀이다. SK는 세밀한 플레이로 점수를 짜내는 데 능하고, 견고한 수비가 강점이다. 또 박희수 정우람으로 이어지는 철벽 불펜이 자랑이다. 반면 롯데는 SK에 비해 짜임새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분위기를 타면 무섭지만 어이없는 플레이가 심심찮게 나온다.

그러나 PO 3차전을 보면 '롯데 와이번스', 'SK 자이언츠'라고 불러야 될 것 같다. 롯데가 막강 불펜을 효과적으로 가동해 SK를 압박한 반면, SK는 수비실책과 투수의 보크, 타선의 집중력 부족을 드러냈다.

롯데 우익수 손아섭은 4회 SK 이호준이 때린 2루타성 타구를 펜스를 잡고 점프해 잡아냈다. 또 1회에는 선두타자 김주찬이 2루 도루에 성공해 선취득점에 성공했다. PO 1,2차전에서 SK가 6개의 도루를 성공시킬 때 단 1개의 도루도 기록하지 못한 롯데다.

롯데의 '내집증후군' 완전정복은 행운과 상대 실책에 선수들의 집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날 사직구장을 찾은 2만8000명의 부산팬들은 본전을 충분히 뽑았을 것 같다.

한편, 20일 플레이오프 4차전에 SK는 마리오, 롯데는 진명호를 선발 투수로 예고했다.


부산=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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