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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야구하면 금방 떠오르는 게 SK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오른 SK는 무려 세 번이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김성근 감독의 빈틈없이 치밀하고 섬세한 야구로 가을을 지배했던 SK는 지난해 시즌 중에 이만수 감독으로 사령탑이 바뀐 뒤에도 변함없이 강했다. 김 감독이 뿌린 씨앗은 깊게 뿌리를 내리고 튼튼한 줄기를 만들었다. 이만수 감독 체제에서 포스트시즌 큰 무대 경험이 많은 SK 선수들이 스스로 알아서 야구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선수들이 경기 흐름을 읽고 벤치가 따라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능동적으로 움직인다는 찬사가 나왔다.
SK 선수들 몸에 '가을야구 DNA'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이번 포스트시즌 롯데는 이전과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우선 준플레이오프(준PO)에서 두산에 3승1패로 이겼다. 롯데가 5년만에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서 다음 라운드에 진출한 것이다. 여전히 짜임새가 있는 야구라고는 볼 수 없지만 이 가울 롯데에는 뚝심이 있다. 쉽게 주저앉지 않고 상대를 끝까지 몰아붙이는 저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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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두산과 펼친 준PO부터 살펴보자. 8일 1차전에서 3점을 리드하다가 3-5로 역전을 허용한 롯데는 패색이 짙었다. 경기 분위기가 그랬다. 그런데 8회 박준서의 2점 짜리 홈런으로 동점을 만들더니 연장 10회 두산 불펜을 무너트리며 3득점, 8대5로 이겼다. 수비실책이 이어져 어려운 경기였으나 롯데는 결국 이런 허점을 만회했다. 9일 2차전 때도 롯데는 0-1로 끌려가다가 7회 동점을 만들고, 9회 용덕한의 결승홈런으로 승리를 가져갔다. 롯데의 승리 공식은 12일 4차전에서도 이어졌다. 0-3으로 뒤지던 8회 동점을 만드는데 성공한 롯데는 연장 10회 결승점을 뽑았다.
롯데는 17일 SK와의 PO 2차전에서도 연장 10회 밀어내기 볼넷을 얻어내며 5대4, 1점차 승리를 거뒀다. 6회까지 1-4로 뒤지던 롯데는 끈질기게 달라붙어 SK가 자랑하는 최강 불펜 박희수-정우람을 무너트렸다.
연장전 3전승. 확실히 정규시즌과는 달랐다. 롯데는 올해 페넌트레이스에서 13번 연장전을 치렀는데 5승3무5패를 기록했다. 6승3무3패의 두산, 5승2무3패를 마크한 SK에 뒤졌다. 또 역전승(23승)보다 역전패(30패)가 더 많았고, 7회까지 뒤지던 경기에서 9승2무45패를 기록했다. 롯데의 역전 4승과 연장 3경기 전승이 더욱 특별한 이유가 여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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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야구 허약체질인 롯데가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뚝심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든든한 불펜 덕분이다. 준PO에서 김성배 정대현, PO에서는 김성배가 고비 때 마운드에 올라 상대 공격을 틀어막으며 역전의 발판을 만들었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 불펜은 역전승의 가장 큰 힘이었다.
후반으로 갈수록 집중력을 발휘한 타선도 칭찬을 받을만하다. 최상의 선발, 최고의 계투진이 총출동하는 포스트시즌 큰 경기에서는 집중타를 만드는 게 쉽지 않다. 양팀 감독들은 한박자 빠른 투수 교체로 상대 타자를 압박한다.경기 초반은 투수전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 결국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경기 후반 승부가 갈라질 때가 많은데, 롯데 타선은 이때 상대의 허점을 효과적으로 파고들어 승리를 따냈다.
PO 2차전에서 정 훈이 연장 10회 만루에서 SK 마무리 정우람으로부터 밀어내기 볼넷을 얻어냈다. 준PO 4차전에서는 뛰는 야구로 상대 배터리를 흔들어놓으며 상대 실책까지 유도해 결승점을 뽑았다.
여전히 허술해보이지만 알차게 실속을 차리고 있는 롯데. 가을 열등생 롯데에 가울야구 DNA가 생성된 것일까.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