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었다, 작아졌었다" 성숙해진 이대호의 고백

김용 기자

기사입력 2012-10-11 09:34



올해 초였다. 이대호가 롯데를 떠나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유니폼을 입기로 결정됐고, 이대호는 새 팀의 스프링캠프 합류 준비를 앞두고 있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타자. 자신감이 넘쳤다. 이대호는 "일본 투수들의 견제, 반발력이 적은 일본 공인구 등에 대한 걱정이 없는가"라는 질문에 "아무런 문제가 될 게 없다"며 항상 자신있는 모습을 보였다.

이대호가 일본 무대 첫 시즌을 마치고 금의환향했다. 낯선 무대에서 타점 92개를 올리며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한 한국인 최초로 타점왕 타이틀을 차지했으니 성공적인 첫 시즌이라고 평가하기에 충분하다. 이런 이대호가 "내년 시즌에는 더 좋은 성적이 날 것으로 확신한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내년 시즌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 상황에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중요한건 이런 이대호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킬 가능성이 매우 커보인다는 것이다. 이유가 있다.

입국 기자회견에서 이대호의 모습은 한국에서 슈퍼스타 대접을 받을 때와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한국에서는 "힘들다", "어렵다"는 뉘앙스의 말을 절대로 하지 않던 이대호였다. 아니, 정말 힘들다고 느껴본 적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런 이대호가 솔직담백하게 일본생활에 대해 털어놨다.

이대호는 일본 생활에 대해 "너무 힘들었다. 체력 싸움이었다. 오후 1시 경기를 하기 위해 아침 7시30분에 일어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한국에서는 경기 전 훈련 후 쉴 수 있었는데 일본은 다시 그라운드에 나가 수비훈련을 해야했다. 한국야구가 몸에 베어있다보니 처음에는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133경기를 치렀다. 때문에 144경기 전경기 출전도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이대호는 "시즌 막판에는 정말 힘들었다. 코칭스태프가 배려를 해주려 했지만 경기에 나서지 않으면 내 자신이 약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경기 출전을 강행했다"고 했다.

시즌 초반 가진 부담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대호는 "한국을 대표해 갔다. 내가 실패하면 후배들 앞길을 막는 일이 된다는 생각에 부담감이 많았다"며 "홈런이 안나오자 주위에서 계속 얘기를 하는 것도 신경쓰이는 부분이었다"고 고백했다.

시즌 초반 부진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이대호는 "한국에서는 타석에서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다. 타이밍만 맞으면 쳤다. 그런데 일본에서 나도 모르게 칠 수 있는 공을 그냥 흘려보내는 내 모습을 봤다"며 "성적이 안나니 나도 모르게 작아졌다"고 말했다. 또 "홈구장이 오사카 돔이지 않나. 첫 1달 동안은 나도 모르게 경기장을 볼 때마다 '우와'라는 생각을 하며 어리둥절하기도 했다"고 말해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야구에 대한 자존심이 누구보다 강한 이대호였다. 때문에 이 선수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 믿기 힘든 고백들이 줄줄이 이어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한 시즌을 돌아봤을 때 자신이 내릴 수 있는 냉철한 평가였다. 일본에서의 첫 시즌, 충분히 잘했다. 하지만 이런 깨달음들이 내년 시즌 자신을 더욱 강해지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것을 알고있는 듯 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다. 지금 이대호의 모습이 딱 그렇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