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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첫 '동반 10승'의 주인공 이용찬 노경은의 재발견. 올시즌 두산의 올시즌 최대 수확이다.
최고 투수 출신 KIA 선동열 감독은 "투수의 성장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계기는 마운드 위에서 내 공이 최고라는 자신감"이라고 말했다. 마운드에 선 투수는 타자와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끊임 없이 자기 자신의 마음 속 '불안'과 싸운다. 결국 대부분은 진다. 잘 싸우다가도 한 순간 충격과 실수가 마음 속에 심연의 어둠을 던진다. '자기 자신과의 승부에 졌다'는 말은 실제 현실에서 일어날 확률이 10%도 안되는 실현되지 않은 불안감에 무릎을 꿇었다는 뜻이다. 만년 유망주란 꼬리표를 달고 있는 선수 대부분이 이 과정을 지금 현재도 반복중이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한 구절이다. 노경은은 "어느 순간 내가 던지면 상대가 못 칠 것만 같았다. 무조건 상대 타자를 잡을 수 있을 거 같았다"고 말했다. 김진욱 감독은 "(이)용찬이나 (노)경은이가 실점 이후의 태도와 모습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두 선수는 단단했던 알을 깨부수고 당당하게 세상 밖에 섰다.
공이 빠른 투수는 귀한 취급을 받는다. 에이스가 될 가능성이 있어서다. 힘이 좋은 거포 유망주에게 미래의 4번타자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이용찬과 노경은은 공이 빨랐다. 그만큼 기대가 컸다.
하지만 올시즌 전까지는 패턴이 단조로웠다. 주로 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위주였다. 물론 공이 빠른 만큼 투 피치로도 정상급 투수가 될 잠재력이 충분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가지 전제조건이 있었다. 세련된 제구력이다. 정교한 로케시션에 대한 부담감. 오히려 독으로 작용했다. 특히 위기 때 완벽한 코스의 공을 던지려 시도하다 오히려 4사구나 가운데 몰리는 공으로 한순간에 무너지기도 했다.
두 선수의 선택은 타이밍 승부였다. 구종을 늘렸다. 핵심은 포크볼이었다. 정명원 코치와 함께 완벽한 실전 기술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커브도 다듬었다. 타이밍 싸움이 시작됐다. 150km를 넘나드는 포심패스트볼과 포크볼의 만남은 훌륭한 결합 상품을 낳았다. 빠른 공 타이밍에 맞춰놓고 준비하던 상대 타자들의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양의지와의 동반성장
노경은 이용찬의 성장에 포수 양의지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양의지의 인사이드 워크 능력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김진욱 감독은 "여전히 인사이드 워크에 대해 배워가야 할 부분이 많다. 하지만 지난해에 비해 많이 성장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노경은 이용찬의 좋은 활약에 있어 양의지의 성장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19일 KIA전 최대 고비였던 6회 2사 1,2루에서 KIA 유일의 3할 타자 김원섭을 118km 느린 커브로 땅볼을 유도하는 장면은 결과를 떠나 인상적인 선택이었다. 김원섭은 올시즌 노경은의 빠른 직구를 홈런으로 연결했던 타자다.
여러 구종으로 본격적인 타이밍 승부를 펼치기 시작한 올시즌의 두 투수에게 양의지의 리드는 중요하다. 상대 타자의 심리와 경기 상황 등을 고려한 구종 선택 하나가 경기 흐름을 바꿀 수 있다. 부쩍 성장한 양의지의 인사이드 워크가 노경은 이용찬과 상생의 동반성장 고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