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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피의 에이스' 배영수(31·삼성)의 영광의 상처가 보고 싶었다. 그는 2006년말 오른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팔꿈치 주변 15㎝ 가량을 잘라서 너덜너덜해진 인대를 새 것으로 접합해줬다. 그는 웃으면서 "너무 자주 보여준다.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다.
1일 대구구장에서 만난 배영수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차례로 맛보고 거울 앞에서 무덤덤하게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그는 2000년 경북고를 졸업하고 1차 지명으로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2006년까지 그의 앞을 가로막는 건 없는 듯 했다. 2004년 다승왕(17승2패), 2005년 탈삼진왕(147개)을 차지했다.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 2승1세이브로 삼성의 2연패를 이끌었다. 그해말 수술대에 올랐다. 2007년을 재활 훈련을 하면서 통째로 쉬었다. 돌아온 2008년 9승8패로 괜찮았다. 그런데 2009년 1승(12패)이라는 치욕적인 성적을 냈다. 2010년과 2011년도 나란히 6승에 머물렀다. 올해 7년 만에 다시 10승(6패) 고지에 올랐다. 다들 배영수의 인간 승리라고 했다.
그런데 정작 주인공은 차분했다. "아프면서 인생 많이 배웠다. 야구 잘 할 때는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못 하니까 더 떠나더라. 날 꾸준히 생각해주는 사람은 100명 정도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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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수는 수술 받기 전까지 야구를 못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19세에 삼성 유니폼을 입었고, 그 다음해부터 1군에서 선발의 한 자리를 꿰찼다. 그리고 입단 5년 만인 2004년 국내 최고 에이스라는 평가를 받았다. 구속 150㎞의 빠른 직구와 날카로운 슬라이더로 타자들을 찍어눌렀다.
그는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는 정말 싸가지도 없었다. 내가 최고인 줄 알았고 무서운 게 없었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배영수에게 통산 100승은 금방 넘어설 낮은 고지 처럼 보였다. 그의 계산 보다 2~3년 정도 더 걸렸다. 수술 받고 2009년부터 3년간 내리막을 탄 결과였다. 그는 "아프고 나니까 옛날 꾸준히 잘 한 선배님들 기록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훅 떨어지는데 어떻게 할지 답이 없었다"고 했다. 당시 대인기피증이 생겼다. 눈과 입, 손이 제일 싫었다. 사람들 눈에 보이면 입방아에 올랐고, 또 자신의 얘기가 가슴 아픈 글로 찍혀 나왔다.
김진우의 커브가 부럽다
배영수는 요즘 후배들을 보면서 잘못 하는 게 보여도 시행착오를 해보게 내버려둔다.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대신 그는 선후배할 것 없이 좋은 점이 있으면 배우려고 한다. 예전엔 자신의 투구 영상만 봤다. 요즘 류현진(한화) 윤석민(KIA) 나이트(넥센) 같은 잘 한다는 선수들의 동영상을 자주 돌려본다. 그러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운다.
그는 커브를 잘 못 던진다. 자신의 팔 회전 각도와 커브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배영수는 "커브를 던질 수 있다면 더 좋은 성적이 나올 것 같다. 김진우의 커브를 배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젊다는 걸 빼고는 후배들에게 딱히 부러운 건 없다고 했다.
배영수는 국내에서 해볼 건 거의 다 해봤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4번 했고, 다승왕, 탈삼진왕까지 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이렇게 동기부여를 한다. "한번씩 더 해보고 싶다. 자식이 생기니까 아빠가 이런 사람이란 걸 다시 보여주고 싶다." 배영수는 지난 3월 첫 딸 은채를 얻었다. 앞으로 아들이 태어나면 야구를 시키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 이유는 아들이 야구를 했는데 아버지 보다 못할 경우 받을 부자의 스트레스가 싫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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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수는 어릴 때 부모가 이혼을 해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그래서 자신은 가족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강한 책임감을 갖고 있다. 요즘은 퇴근하고 집에 가면 딸 은채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고 했다. 굴곡 많은 인생을 살아온 배영수는 나이 보다 훨씬 어른이 돼 있었다.
야구팬 중에는 배영수를 은퇴를 앞둔 노장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너무 이른 나이에 큰 성공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내 나이에 대한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이제 만 31세다. 지금이 한창이다. 넥센 심수창과 친구다"라고 했다.
그럼 배영수는 야구 선수로 몇 회쯤에 와 있을까. 한참을 생각한 그는 "클리닝타임 지나고 6회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1~3회 잘 던졌고, 4~5회 비바람이 몰아쳤다. 이제 다 지나갔다. 6회부터 9회까지 제 능력으로 마무리를 잘 하는 것만 남았다"고 했다. 대구=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