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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돌부처'와 마주 앉았다. 사람들은 이 돌부처를 '끝판대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국민타자 이승엽과 맞대결한다면~
지난달 31일 대구구장에서 만난 그가 가장 난처해한 질문이다. "팀 선배 이승엽과 맞대결해서 3구 삼진을 잡으려고 마음 먹는다면 어떻게 공배합을 할 건가." 이승엽은 지난해 12월, 8년 만에 친정 삼성으로 돌아왔다. 그는 2005년 오승환이 삼성에 입단하기 전 2003시즌을 끝으로 일본으로 떠났다. 따라서 둘은 이번 시즌, 처음으로 같은 삼성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물론 국가대표팀에서 같이 태극마크를 단 적은 있다. 아직 공식적으로 투수와 타자로 맞대결한 적은 없다. 앞으로 오승환이 다른 팀으로 이적하지 않는 한 맞붙을 가능성은 낮다.
'오승환=직구' 등식이 있을 정도다. 그는 누구나 생각하는 직구를 던져 승리를 지켜낸다. 그의 직구는 다른 투수들보다 회전수가 많아 빠름과 동시에 묵직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타자들은 뻔히 직구를 던질지 알면서도 안타를 잘 치지 못한다.
지금까지 팔씨름 져본 적이 없다
오승환과 악수를 해보면 범상치 않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힘을 주지 않는 것 같은데 강한 악력이 전해오는 듯하다. 그가 구속 150㎞를 넘어서는 직구를 던질 수 있는 건 강한 악력 때문이라고 한다. 공을 손가락에서 놓는 순간 찍어누르는 힘이 강해 공에 회전이 많이 걸리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손아귀 힘은 알아줬다. 이미 잘 알려진 사실 하나. 몇 해전 삼성트레이닝센터에서 악력을 측정했는데 이곳을 다녀간 삼성스포츠단 산하 모든 선수들 중 최고였다.
악력과 함께 어깨 근육도 잘 발달돼 있다. 그래서인지 오승환은 야구 이상으로 팔씨름을 잘 한다. 그는 "지금까지 살면서 팔씨름은 져본적이 없다"고 했다. 오른팔, 왼팔 모두 그렇다. 야구선수들도 심심할 때 서로 힘자랑을 하는 차원에서 팔씨름을 한다. 오승환은 2010년 팔꿈치 수술하기 전까지 오른팔로 대결했다. 누구한테도 지지 않았다. 그런데 수술 이후 팔을 보호하기 위해 오른팔 씨름은 안 한다. 대신 왼손으로 했다. 그래도 다 이겼다.
이런 오승환도 남들에게 부러운 게 있을까. 다른 투수로부터 빼앗아 오고 싶은 것 말이다.
류현진의 체인지업, 윤성환의 커브를 빼앗아 오고 싶다
그는 먼 곳에서 찾지 않았다.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골랐다. 한화 특급 좌완 류현진의 체인지업과 삼성 동료 윤성환의 커브를 꼽았다. 두 선수의 체인지업과 커브는 국내 최정상 구질로 평가받았다. 류현진의 체인지업은 타자들의 타이밍을 기가막히게 빼앗는다. 윤성환의 커브는 폭포수 처럼 떨어지며 제구까지 된다. 오승환은 전문가들로부터 슬라이더에 버금가는 제2의 변화구를 체득해야 한다는 주문을 받는다.
오승환은 류현진 윤성환과 친분이 두텁다. 그래서 자주 물어본다. 둘은 어떻게 던지는 지 알려준다. 그는 "프로에서 뛰는 웬만한 선수들은 야구만 20년 가까이한 전문가들이라 이론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비법을 전수받는다 해도 자기 것으로 만들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동계훈련 때마다 체인지업, 커브 등 변화구를 연마하지만 아직 실전에서 못 던진다. 마무리 투수에게 공 하나는 무척 중요하다. 완벽하지 않은 구질을 던졌다가 맞으면 팀의 승리가 날아가기 때문이다.
최근 오승환은 갑자기 나온 해외진출 얘기로 난처한 상황을 맞았다. 일본 오릭스 구단 관계자가 김성래 삼성 수석코치에게 오승환을 영입하고 싶다고 한 게 발단이었다. 오승환은 이번 인터뷰에 앞서 "해외 진출 관련 질문에는 대답하고 싶지 않다"는 전제 조건을 달았다. 그는 이번 시즌이 종료되면 삼성 동의하에 해외진출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아시아 최고 마무리로 성장한 그에게 일본 또는 미국 구단들이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오승환 역시 "해외진출은 모든 선수들의 꿈이다. 나 역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퇴보하지 않기 위해 그런 목표를 갖고 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시즌 중이고 포스트시즌도 남아 있는 상황이라 해외진출을 얘기할 시기가 아니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몸이 아프거나 힘들 때마다 혼잣말로 '나는 행복하다'라는 말을 곱씹었다고 했다. 블론 세이브로 승리를 날려버리면 '모든 건 내 탓이다'라고 자책하고 잊어버렸다. 아파서 수술대에 오를 때도 행복한 상상을 했다. 그래서 지금의 돌부처가 탄생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물었다. "선발 투수를 했다면 지금쯤 프로에서 몇 승을 했을까." 오승환은 "야구 그만 뒀을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그는 3일 현재 프로 8년 동안 통산 242세이브(24승12패11홀드)를 기록했다. 대구=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