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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정민태 투수코치는 좌완 투수 강윤구를 보면 입버릇처럼 말한다.
"(강)윤구는 제구력만 잡히면 한화 류현진, SK 김광현에 버금가는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특급 좌완 투수가 될 것이다"라고.
하지만 국내 투수 가운데 손에 꼽을 정도로 최대한 앞으로 가져나와 공을 뿌리는데다, 투구시 팔 스윙이 상당히 역동적이다. 145㎞ 이상의 직구를 손쉽게 꽂아넣는다. 홈 플레이트로 들어오는 공의 움직임과 종속이 좋아 어지간하면 연속 안타를 허용하지 않는다.
다만 정 코치의 전제대로 '제구력'은 늘 강윤구의 아킬레스건이다. 시즌 첫 선발 등판인 지난 4월11일 SK전에서 6⅔이닝동안 무려 13개의 삼진을 잡아낼 정도로 뛰어난 공을 가지고 있으면서 경기당 평균 4개의 4사구를 허용할 정도로 제구력이 들쭉날쭉하다. 오죽했으면 넥센 김시진 감독은 4사구 숫자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자 지난 6월16일 롯데전을 마친 후 강윤구를 2군으로 내려보냈다. 한창 순위 싸움을 하고 있는 과정이었지만 '미래의 에이스'로 키우기 위해선 일종의 자극제가 필요했다.
그리고 한달 가깝게 부르지 않다가 강윤구가 2군 경기에서 '영점 잡기'에 성공했다는 보고를 들은 후에야 7월11일 1군에 복귀시켰다. 이후에도 계속 불펜에서 대기한 강윤구는 선발로 뛰던 밴 헤켄과 김병현이 각각 부상과 부진으로 전력에서 이탈하자 선발 자리를 잡았고, 한달 반만의 복귀전인 4일 LG전에서 7이닝동안 3안타 6탈삼진에 무실점의 호투를 펼쳤다. 무엇보다 4사구가 1개에 불과한 것이 상당히 고무적인 결과였다.
바로 다음 경기였던 10일 목동 한화전. 상대는 공교롭게 강윤구의 롤모델이라 할 수 있는 류현진이었다. 경기에 앞서 김시진 감독은 "류현진과 상대한다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 한다"며 강윤구의 분발을 촉구했다.
역시 초반엔 두 투수의 등급이 확연히 비교됐다. 강윤구는 1회부터 한화 첫 타자인 오선진을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걸어내보내더니 2번 이여상에게도 2구째까지 스트라이크를 잡지 못했다. 이여상이 희생번트를 댄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하지만 3번 최진행마저 볼넷으로 내보내며 1사 1,2루의 위기를 맞았다. 타율 1위를 달리는 김태균을 우익수 플라이로 잡으며 숨을 돌린 강윤구는 이대수를 144㎞의 직구로 삼진을 잡으며 겨우 이닝을 마쳤다. 1회에만 24개의 공을 던졌다. 반면 류현진은 1회 넥센 김민성과 장기영을 각각 3구만으로 내야땅볼과 파울 플라이로 잡고 강정호마저 3루 땅볼로 잡아냈다. 강윤구보다 10개나 적은 14개의 공으로 가볍게 이닝을 마쳤다.
하지만 강윤구는 2회부터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오재필을 체인지업으로 삼진을 잡는 등 등 3자 범퇴를 시키더니, 3회 김경언 오선진 이여상에 이어 4회 최진행까지 연속 4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초반 투구에선 마치 '영점잡기'를 하듯 계속 볼을 던지다 감을 잡으면 연속으로 직구를 찔러댔다. 특히 높은 직구에 한화 타자들의 방망이가 속수무책으로 돌아갔다.
볼넷 4개를 내줬지만 7회 투아웃을 잡을 때까지 노히트 노런이었다. 하지만 이어 나온 오재필에 중전 안타를 맞으며 전광판 안타 표시등에 '1'이라는 숫자가 비로소 찍혔다. 강윤구의 눈빛엔 아쉬움이 스쳤고, 이를 간파한 넥센 벤치는 임창민으로 투수를 교체했다. 강윤구는 동료와 관중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으며 마운드를 내려왔다. 6⅔이닝 1안타에 10탈삼진으로, 김태균을 제외한 선발 타자 전원을 돌려세우는 대기록이었다.
류현진도 5회까지 2안타의 무실점으로 호투했지만 6회 유한준에 2타점 적시타를 맞았다. 이날 류현진의 투구를 보기 위해 메이저리그 스카우트이 목동구장에 몰려들었지만, 정작 더 눈길을 잡은 것은 강윤구의 호투였다.
비록 넥센 불펜진이 8회 2점을 내주며 강윤구의 승리를 날려버렸지만, 자신의 롤모델을 압도하는 피칭을 보인 강윤구는 이날의 단연 최고의 히어로였다.
목동=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