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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기다리는 것 이외의 대안이 안 보인다.
시즌 초부터 거의 붙박이로 KIA 2번 타순을 책임지던 유격수 김선빈은 지난 6월초부터 체력 저하를 호소해왔다. 작은 체구지만, 강단이 있는 김선빈이 스스로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체력이 부친다는 뜻이다. 팀의 주전 유격수로 넓은 수비범위를 커버하랴, 또 선동열 감독 체제아래에서 한층 중요해진 2번 타자로 공격의 앞선에 나서며 기운이 부쩍 빠졌기 때문이다. 마음같아서는 며칠 푹 쉬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경기를 빠질 수는 없었다. 당장 유격수와 2루수를 김선빈만큼 동시에 매끄럽게 해 줄 선수가 부족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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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선 감독이 내세운 대안이 바로 조영훈이다. 선 감독은 지난 5일 잠실 두산전을 앞두고 "확실히 김선빈의 공격력이 많이 떨어졌다. 요즘 피곤해서인지 공이 전혀 안맞고 있다"면서 "조영훈이 2번에서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즉시 조영훈을 이날 선발 라인업에서 2번 타순에 기용했다.
지난 6월말에 KIA에 새롭게 둥지를 튼 조영훈에게 사실 2번은 조금 낯선 자리다. 원래 KIA가 조영훈에게 기대했던 것은 '제2의 김상현'처럼 장타력을 갖춘 타자였다. 타순으로 치면 이범호가 빠진 클린업트리오의 한 자리, 혹은 6~7번 등으로 찬스 때 장타를 터트려줄 만한 클러치타자로 자리매김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실제로 팀 합류 초반에는 이런 모습이 나타났다.
그러나 갈수록 조영훈의 역할은 축소됐다. 김상현이 돌아오고, 최희섭마저 체력을 회복하고 난 뒤부터는 이런 현상이 심화됐다. 당초 조영훈의 영입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던 선 감독으로서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늘 "조영훈은 기회만 많이 주면 주전 타자로 3할을 칠 수 있다"며 기대했지만, 점점 기회를 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에 떠올린 것이 '조영훈 2번타자' 카드였다. 여러모로 잘 맞아 떨어진 상황이 있었다. 김선빈이 지쳐가면서 방망이가 무뎌졌고, 조영훈도 개점 휴업하는 날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김선빈의 공격 부담감을 덜어주는 동시에 조영훈의 잠재력을 뽑아쓸 수 있는 두 가지 문제를 고민하던 선 감독은 결국 두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을 내놨다.
그렇다면 '조영훈 2번 카드'의 효과는 실제로 어느 정도일까. 일단 아직은 판단 불가다. 이제 겨우 2경기를 했을 뿐이다. 조영훈은 2경기에서 7타수 1안타 1타점으로 부진했다. 그런데 팀은 또 2연승을 했다. 조영훈이 팀에 큰 기여를 한 것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짐은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한편으로 이 기간에 하위타선으로 내려간 김선빈도 연속 2차례 경기 도중 대수비로 교체되면서 총 4타수 1안타 1득점 1도루를 기록했다. 여전히 김선빈의 방망이가 무겁다는 증거다. 결국 KIA의 입장에서는 향후 당분간 '조영훈 2번 카드'를 내밀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영훈에 대한 기다림과 믿음이 더욱 필요한 이유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