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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네 팀에 (4번 칠) 선수 정~말 없구나."
정성훈이 불과 두달 전에 들었던 얘기라고 한다. 물론 친한 지인들의 농담 섞인 표현이었겠지만, 당시엔 실제 분위기가 그랬다는 것이다.
예전의 그 정성훈이 맞는가
98년 해태에서 데뷔한 정성훈은 지난해까지 13시즌을 뛰면서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경우가 6차례 뿐이었다. 현대에서 뛰던 2005년에 17홈런을 기록한 게 개인 한시즌 최다 기록이다. 한방을 갖춘 타자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전형적인 홈런타자라는 얘기를 듣진 못했던 선수였다.
그런 정성훈이 이번 시즌 들어 펄펄 날고 있다. 28일 현재 15경기에서 7홈런으로 이 부문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의 등 뒤로 강정호 박석민 이승엽 등이 뒤따르고 있다. 정성훈이 이 시점에 홈런 1위를 달릴 것이라 예상했던 전문가들은 없을 것이다.
단순 산술계산으로 한시즌 60개를 넘는 페이스다. 물론 이건 현실적이지 않다. 시즌을 치르다 슬럼프도 겪게 될테고, 집중견제를 받기 시작하면 한동안 홈런이 없을 수도 있다. 어쨌든 지금 보여주는 히팅 능력이라면 30개 언저리는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홈런레이스에서 충분히 당당한 후보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놀리던 지인들, "미쳤구나"
정성훈은 오키나와 전훈캠프가 끝나갈 무렵 "네가 LG의 4번타자를 맡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스스로도 놀랐을 것이다. LG 김기태 감독은 좌타라인이 좋은 팀의 구심점을 만들기 위해 4번타자는 무조건 오른손타자에게 맡기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정성훈이 그 주인공이 됐다.
처음 4번타자 얘기가 나왔을 때 주변에서 어떤 반응이었는지를 질문했다. 정성훈은 "처음엔 '너네 팀에 선수 정말 없구나'란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정성훈은 "주위에서 '너 미쳤냐?'라고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홈런의 내용이 양질이다. 28일 롯데전에서도 6회에 3-3 동점을 만드는 솔로홈런을 터뜨렸다. 영양가 높은 홈런이 많았다. 물론 본인의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김무관 타격코치와 상의하면서 타격폼을 손질하고, 4번타자가 받게 되는 스트레스를 이겨내려 애썼을 것이다.
한번의 선발 제외, 김기태 감독의 눈치
지금까지 정성훈의 경기 출전 일지를 살펴보면 유독 눈에 띄는 날이 있다. 모든 경기에서 4번타자로 선발 출전했지만 딱 하루, 지난 14일 잠실 KIA전에선 선발이 아니라 교체멤버로 출전했다. 특별히 아픈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개막후 5경기를 치른 시점까지 정성훈이 4번타자란 타이틀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다. 김기태 감독이 눈치를 챘다. 김 감독은 14일 KIA전에선 정성훈을 선발라인업에서 뺐다. 당시 김 감독은 "성훈이가 힘들테니 하루쯤 선발에서 내려놓아주면 본인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었다.
첫 5경기에선 홈런이 없었다. 그런데 선발오더에서 하루 빠지더니 이튿날인 15일 KIA전부터 4경기 연속 홈런을 터뜨렸다. 지금과 같은 홈런타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한 타이밍이다.
김기태 감독은 두가지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선수가 힘들어하는 걸 지켜본 뒤 잠시나마 쉬도록 조치했다. 또하나는 "너무 짐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4번타자란 자리를 즐겨야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과거 홈런왕과 타격 1위를 경험했던 타자 출신 감독이 취한 방법이었다.
정성훈은 28일 "(지금 많이 치고 있지만) 나중에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다"면서 당장의 결과물에 들뜨지 않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감독과의 좋은 호흡 속에 정성훈은 4번타자의 잠재력을 드디어 끌어내고 있다.
부산=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