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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만에 빛본 LG 심광호, 어느 마이너리거의 희망

이명노 기자

기사입력 2012-04-11 10:48 | 최종수정 2012-04-11 10:49


지난 2월 오키나와 전지훈련 때 신인 조윤준에게 조언을 해주고 있는 LG 심광호. 스포츠조선DB

그동안 철저히 2인자였다. 무려 16년 동안 그랬다. 긴 터널을 지나와서일까. 그는 인터뷰 때마다 "앞으로도 2군 선수들이 많은 관심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LG의 17년차 포수 심광호는 지난 주말 삼성과의 개막전에 주전포수로 나섰다. 데뷔 후 처음이었다. "수학여행 온 기분"이라며 설레는 마음을 표현했지만, 그동안 그가 지내온 시간을 떠올려보면 단순히 설렘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는 없는 순간이었다.

심광호는 전형적인 2인자였다. 데뷔 후 규정타석을 채운 적이 단 한차례도 없을 정도다. 가장 많은 경기에 나섰던 해는 2006년 한화 시절의 80경기. 오랜 시간 신경현의 백업포수로 뛰면서 팬들에게 '2호기'로 불렸다.

주연이 될 뻔한 적도 있었다. 2006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3차전 때 1-3으로 뒤진 8회말 대타로 나서 동점 투런포를 날렸다. 상대는 지금 최고의 마무리투수로 올라선 오승환이었다.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8년 삼성으로 트레이드된 뒤에 자리를 잡지 못했다. 팔꿈치 수술을 받은 뒤엔 아예 전력외로 분류됐고, 2010시즌 뒤엔 방출의 아픔을 겪었다.

전화위복이었을까. LG에서 새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지난해 조인성의 뒤를 받치면서 25경기에 나섰고, 특히 외국인선수 주키치와 찰떡호흡을 보이며 전담포수로까지 거론됐다. 주키치는 아직도 "심광호는 내게 최고의 포수"라며 엄지를 치켜든다. 지난해 전지훈련 때부터 이상하리 만큼 자주 호흡을 맞추게 됐고, 결국 눈빛만 봐도 통하는 배터리가 됐다.

올시즌에는 당당히 1인자다. 그래도 그는 후배들의 성장을 위해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손사래를 친다. 오히려 후배들의 장점을 어필하기 바쁘다. 올시즌 심광호와 함께 마스크를 쓸 유강남과 조윤준은 "정말 배울 게 많은 선배"라고 입을 모은다. 아직도 상대 타자들을 분석하느라 밤을 지새우는 모습, 그리고 흐트러짐 하나 없는 평소 생활습관을 보며 그대로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있다.

심광호의 머릿속에는 언제나 '어떻게 하면 상대를 괴롭힐 수 있을까'라는 생각 뿐이다. 타자의 생각과 역으로 갈 때, 그리고 또한번 역으로 갈 때를 구분해 수싸움을 펼친다. 그만의 투수 리드 노하우는 16년 동안 좋은 투수들과 호흡을 맞춘 결과물이다. LG 투수들은 심광호에 대해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는 포수"라고 말한다. 경기에 대한 압박감을 느끼는 어린 선수들은 특히 그렇다.


스무살 때 시작한 프로생활, 어느덧 서른여섯이 됐다. 보통 2군에서 맴도는 선수들은 서른이 되기 전 유니폼을 벗는 일이 많다. 아직도 공부하는 포수 심광호. 수많은 '마이너리거'들의 롤모델이자 희망이 아닐까.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지난해 찰떡 궁합을 과시한 주키치(오른쪽)와 심광호. 스포츠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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