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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야구', 유머와 냉정이 공존한다

김남형 기자

기사입력 2012-03-22 09:40 | 최종수정 2012-03-22 09:40


'김기태 야구'에는 해학과 웃음이 있다. 김 감독(뒷모습)이 지난 18일 삼성과의 시범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뒤 선수들과 '손가락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잠실=전준엽 기자 noodle@sportschosun.com

지난 20일 잠실구장에서 두산과 LG의 시범경기 첫 맞대결이 열렸다.

시범경기임에도 양팀 감독이 적극적인 어필을 하면서 화끈했다. 연장 10회 승부 끝에 1대1 무승부로 끝났다.

이날 재미있는 장면이 나왔다. 9회 LG 공격때였다. 1사 1,3루 찬스가 만들어지자 LG 팬들이 '이병규!'를 연호했다. 물론 유니폼넘버 9번의 '큰 이병규'를 의미했다. 히팅 능력이 뛰어난 이병규가 대타로 나와서 한방 쳐주길 원했을 것이다.

이때였다. LG 벤치에서 진짜로 이병규가 대타로 나와 타석으로 향했다. 그런데 관중석에선 폭소가 터져나왔다고 한다. 실제 타석에 나온 건 유니폼넘버 9번의 '큰 이병규'가 아니라 유니폼넘버 7번의 '작은 이병규'였던 것이다. 같은 이름의 다른 타자가 나왔지만, LG팬들은 나름 즐거움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사연은 이렇다. '큰 이병규'는 이날 '게임조'에 포함돼있지 않았다. 경기전에 이병규가 김기태 감독에게 "몸이 근질근질해서 못 참겠습니다. 출전 좀 시켜주세요"라고 애교섞인 투정을 부렸지만, 처음부터 출전 명단에서 빠져있었던 것이다. 이병규는 오키나와 전지훈련때 베이스러닝을 하다가 허벅지를 약간 다쳤다. 근육통 때문에 훈련에 차질이 있었기 때문에 보호 차원에서 이날까지는 '게임조'에서 빼놓았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관중이 이병규의 이름을 계속 부르자 김기태 감독이 다른 이병규를 대타로 내는 센스를 발휘한 것이다. 물론 대타를 한번쯤 낼만한 타이밍이기도 했다.

하루 지난 21일 김기태 감독에게 "관중이 이병규를 연호했기 때문에 다른 이병규를 대타로 낸 것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김 감독은 짐짓 몰랐다는 투로 "아! 팬들이 원했었나? 덕아웃 안에선 잘 안들려서. 에~이, 그러면 팬들께서 등번호까지 함께 외쳐주셔야지 헷갈리지 않지"라며 웃었다.

초보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김기태 야구'에는 이처럼 세세한 부분에서 팬들을 위하는 유머 혹은 해학이 담겨있는 게 느껴진다. 지난 17일 삼성과의 시범경기 첫날에는 이승엽 타석이 돌아오자 김 감독이 일부러 마무리투수 리즈를 올렸다. 쌀쌀한 날씨에 야구장을 찾은 팬들을 위한 작은 선물이었다.


물론 정규시즌에 본격적으로 돌입하면 단순히 팬서비스를 위해 선수를 기용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철저하게 선수의 당일 컨디션과 기량 위주로 팀운용이 이뤄질 것이다.

실제 사례가 있다. 지난 17일 삼성전을 앞두고 선발라인업이 나오자 LG 내부에서 놀랍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이날 선발 포수로 김태군이 낙점됐던 것이다. 김태군은 지난 1월초 열린 체력테스트에서 불합격하면서 전훈캠프에 따라가지 못했다. 나중에 체력을 회복했지만 역시 캠프에는 합류하지 못했다. 캠프에 무려 5명의 후보 포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첫 시범경기 선발포수로 심광호 등 다른 선수가 나설 것으로 예상됐지만 김기태 감독은 김태군을 깜짝기용했다.

전훈캠프에 참가하지 못했던 김태군에게 첫날부터 '어디 한번 그간의 노력을 보여봐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며, 한편으론 캠프에 다녀온 5명의 포수들에게 '주전 경쟁은 지금부터 시작이다'는 신호를 던진 셈이다.

투수로 치면, 김기태 감독은 강약 흐름을 잘 조절하는 '완투형'이다. 때론 강하게, 어떨 땐 여유속에 유머를 발휘하면서 팀을 이끌고 있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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