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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감은 접어둬도 될 듯 하다. '에이스'는 건재하다.
분명히 기록만 보자면, 윤석민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날 경기의 세부 내용으로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정타는 1개 뿐이었다
기록상으로는 난타당한 것 같지만, 실제로 6개의 안타 가운데 제대로 맞아 뻗은 것은 단 1개. 바로 2사 1, 2루에서 박정권이 친 선제 1타점 짜리 중전안타였다. 볼카운트 0-1에서 던진 2구째 체인지업이 정확한 타이밍에 걸렸다. 잘 맞은 타구는 화살처럼 날아가 2루수 안치홍과 중견수 이용규의 사이에 꽂혔다.
그밖의 안타들은 빗맞은 채 절묘한 코스로 향했을 뿐이다. 정근우와 최 정의 내야안타가 대표적이다. 또한 1회 박정권의 적시타 이후 6번 김강민이 볼카운트 1-1에서 친 2루타도 자세히 살펴보면 빗맞은 타구가 드롭성 회전이 걸리면서 중견수와 우익수 사이의 위치에 뚝 떨어진 것이었다.
때문에 비록 안타가 많았지만, 우려할 만한 내용은 아니다. 이날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본 SBS ESPN 김정준 해설위원은 "투구폼이나 밸런스에서 문제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괜찮아보였다"면서 "1회말에 박정권에게 맞은 안타 하나로 실점이 많아지게 된 것 뿐"이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은 지난해까지 SK 전력분석 코치로 활약하며 윤석민을 수 년간 세세하게 분석했던 인물이다. 윤석민에게 어딘가 이상이 생겼다면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경험과 실력이 있다. 그런 그가 "문제없다"고 단언했다.
미리 맞은 매는 보약이다
정규시즌을 앞두고 치르는 시범경기는 마치 본공연에 앞서 해보는 '리허설'과 같다. 투구 밸런스나 제구력, 변화구의 궤적 등을 실전상황에서 다양하게 점검할 수 있는 무대다. 윤석민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실제로 이날 윤석민은 경기 도중 스스로 문제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점검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운드에 오르자마자 삼진과 중견수 뜬 공으로 SK 4, 5번을 가볍게 2아웃을 잡아낸 3회말. 타석에는 앞선 1회말 2타점짜리 2루타를 친 김강민이 나왔다. 주자는 없고, 볼카운트는 2-1로 투수에게 매우 유리한 상황. 그런데 윤석민은 포수 차일목의 사인에 3번이나 고개를 가로 저었다. 4번째 사인에 결국 고개를 끄덕인 윤석민이 던진 것은 126㎞짜리 체인지업. 김강민은 중견수 뜬공으로 물러났다.
주자도 없었고, 볼카운트도 유리했는데 왜 그렇게 고민했을까. 이에 대해 윤석민은 "앞서 SK타자들이 계속 체인지업에 타이밍을 맞춰 치는 바람에 혹시나 내가 체인지업을 던질 때의 폼이나 버릇이 노출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면서 "정말 그런지 체크하기 위해 다시 체인지업을 던지고 싶었다. 포수 사인에 고개를 흔든 것은 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윤석민이 시범경기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 지가 이 하나의 장면과 대답에 담겨있다. 실전에서 벌어질 수 있는 세세한 문제점까지도 보완해 정규시즌을 맞이하려는 생각이다. 윤석민은 "시범경기에서는 오히려 얻어맞는 게 더 낫다. 그런면에서 이번 경기는 정규시즌을 대비한 보약이다. 일단 콘트롤은 캠프 때보다 더 좋았다. 체인지업도 걱정했던 것처럼 습관이 노출되서 맞은 게 아니라 그냥 각도가 좀 밋밋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투수 4관왕은 이렇듯 치밀하고, 대범하게 정규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