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심의 솔직한 박찬호 평가 "지금 같으면 맞는다"

김남형 기자

기사입력 2012-03-15 14:11 | 최종수정 2012-03-15 14:11


박찬호의 구위를 최근거리에서 지켜본 이민호 KBO 심판원이 투구내용에 대해 솔직하게 평가했다. 박찬호가 14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SK와의 연습경기에서 공을 뿌리고 있다. 뒷모습의 구심이 바로 이민호 심판원이다. 인천=전준엽 기자 noodle@sportschosun.com

박찬호는 문학구장 마운드에서 자책할 때도 영어를 썼다고 한다. 외국인선수들이 많이 쓰는 바로 그 단어다. 박찬호가 17년간 미국에서 경쟁해왔다는 사실이 절로 떠오르는 일화다.

한화 박찬호가 14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SK와의 연습경기에서 2⅔이닝 5안타 4실점을 기록했다. 투구수는 62개. 비록 연습경기에 불과하지만 박찬호의 국내 무대 첫 등판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섭씨 5도에 바람까지 부는 쌀쌀한 날씨였다. 포심패스트볼 구속이 전광판 기준으로 최고 148㎞까지 나온 건 고무적이지만, 결과적으로는 투구 내용과 투구수 조절에서 어려움을 겪은 경기였다.

직구 높게 제구되면 결국 박찬호도

성적과는 별도로, 경기후 SK 이만수 감독이나 SK 선수들은 박찬호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뉴욕 양키스 마무리) 리베라의 컷패스트볼을 보는 것 같았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엄밀히 말하면 3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4실점한 케이스에 어울리는 논평은 아니었다. 국내 무대에서 처음 던진 박찬호를 위해 립서비스를 했다고 보는 게 맞다.

이날 이민호 KBO 심판위원이 1회부터 4이닝 동안 구심 마스크를 썼다. 박찬호의 구위를 가장 근거리에서 정확하게 지켜본 것이다.

이민호 심판원에게 "솔직하고 가감없이 박찬호의 피칭 내용에 대해 평가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민호 심판원은 한화 전훈캠프가 차려졌던 일본 오키나와가 아니라 가고시마 쪽으로 출장을 다녀왔기 때문에 이날 박찬호의 피칭을 처음 접했다고 한다.

이민호 심판원은 "추운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제구가 안 됐다. 좋은 공과 안좋은 공의 차이가 워낙 컸다. 직구가 기가 막히게 하나 들어온 게 기억난다. 타자 몸쪽으로 휙 하고 박혔는데 힘이 있었다. 컷패스트볼은 좋았다. 카운트 유리할 때 내야땅볼을 유도하기 좋을 것 같다. 나이가 있는데도 슬라이더 각은 아직 괜찮았다"고 평가했다.


이민호 심판원은 "짧게 본 걸로 전부를 말할 순 없다. 어쨌든 제구가 높았는데, 높게 던지면 우리나라 타자들이 여지없이 공략한다"고 말했다.

보크, 문제 없을듯

박찬호는 지난해 이맘때 오릭스 전훈캠프에서 보크와 관련된 지적을 많이 받았다. 정지동작이 애매하다는 얘기였다. 현재는 어떤 상태일까.

이민호 심판원은 "별 무리 없었다. 보크 문제는 신경 안 써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박찬호가 3회에는 도루도 허용했다. 이민호 심판원은 "견제 동작은 폼이 크지 않았다. 도루를 내준 건 날이 추워서 제구가 어렵고 수비수들이 위축된 플레이를 한 영향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박찬호가 경기 개시 이전에 이민호 심판원을 찾아가 "마운드에서 손을 불어도 됩니까?"라고 질문했다고 한다. 공에 침이 묻으면 부정투구 판정을 받을 수 있다. '스핏볼(spit ball)'을 말하는 것이다.

이민호 심판원은 "본래 날씨가 추울 경우엔 심판 재량으로 봐줄 수 있다. 하지만 손에 입김을 불되 곧바로 유니폼에 닦아야한다고 말해줬다"고 했다.

앞으로도 시범경기 혹은 정규시즌에서 박찬호가 심판원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야구가 큰 틀에선 같지만, 미세한 부분에서 미국과는 다른 한국만의 환경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위압감 속에 등장한 영어

이날 SK 선수들로부터 재미있는 뒷얘기가 흘러나왔다. 한 선수는 "박찬호 선배가 본인 뜻대로 투구가 안되면 마운드에서 영어로 혼잣말을 계속 하더라. 거 왜 용병들이 열받을 때 자주 쓰는 단어 있잖은가. 미국식 습관인 것 같다"며 웃었다. '젠장'이란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이다.

한국프로야구에선 과거 구심과 용병 타자가 바로 이 단어 때문에 오해가 생겨 다투기도 했다. 뒤에 또다른 단어가 붙느냐, 아니냐에 따라 뜻이 확연하게 바뀌는 걸 예전엔 잘 몰랐기 때문이다.

또다른 선수는 "박찬호라는 선수가 나오니 역시 위압감이란 게 조금 느껴졌다. 그저 연습경기일 뿐인데도 운동장 분위기가 달랐다"고 말했다. 메이저리그 124승의 관록이 분명 느껴졌다는 얘기다.

94년 미국에 진출한 박찬호는 무려 17시즌을 그곳에서 뛰었다. 경기력과 별개로 박찬호의 습관이나 영어 구사 능력도 관심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투구내용도 좋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