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조작 LG 박현준, K리그 충격 못 느꼈나?

이명노 기자

기사입력 2012-03-04 12:14


LG 박현준에게 'K리그 승부조작 충격파'는 없었나보다. 검찰 출두를 위해 지난달 29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박현준.
인천공항=전준엽 기자 noodle@sportschosun.com/2012.02.29/

프로축구 승부조작 파문이 터진 뒤에도 학습효과는 없었다.

LG 박현준이 경기조작 혐의를 일부 시인했다. 지난 2일 대구지검에서 8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조사를 받은 이후 드러난 사실이다. 검찰은 함께 의혹을 산 김성현에 대해 체포 뒤 구속이라는 강경한 자세를 보였다. 하지만 경기조작 가담 사실을 인정한 만큼, 박현준에 대해서는 불구속 수사로도 충분하다는 판단이 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프로축구 승부조작 사건 때도 단순가담자는 불구속 수사한 전례가 있다.

현재 밝혀진 사실은 지난해 박현준이 선발등판한 경기서 금품을 받고 최소 두차례 1회 볼넷을 두고 경기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상대팀 투수와 관계없이 조작이 가능한 경우는 먼저 등판하게 되는 홈경기다. 박현준은 지난해 선발등판한 총 10차례의 홈경기 중 6경기에서 1회 볼넷을 내줬다.

중요한 건 시점이다. 김성현의 경우 검찰이 경기조작 시점까지 분명히 밝혀냈다. 넥센에서 뛰던 4월24일 목동 삼성전과 5월14일 목동 LG전이었다. 5월14일 경기의 경우 LG 타자들이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나쁜 공을 계속 건드려 아웃되면서 조작에 실패했다. 결국 이때문에 브로커들에게 협박을 당했고, 보름 뒤 같은 장소에서 열린 LG전에서 사례금 없이 조작을 감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조사과정에서 조작경기에 대한 정보가 흘러나온 김성현의 경우와 달리 박현준은 아직까지 시점이 명확하지 않다. 김성현과 시기가 비슷하다는 관측과 8월 이후라는 예상이 엇갈리고 있다.

박현준이 가장 먼저 1회 볼넷을 내준 홈경기는 4월14일 삼성전이다. 하지만 이날은 1사 1,2루의 위기에서 최형우와 풀카운트, 8구까지 가는 접전 끝에 볼넷을 허용했다. 고의성은 보이지 않았다.

두번째 경기인 5월24일 두산전의 경우 의심할 만한 정황이 충분했다. 아웃카운트 2개를 손쉽게 잡아낸 뒤 김현수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줬다. 초구부터 원바운드되는 폭투를 범했고. 2구는 심판의 얼굴 높이로 향했다. 3구는 낮은 유인구, 4구는 바깥쪽으로 완전히 빠지는 공이었다. 앞서 공격적인 피칭으로 정수빈과 오재원을 삼진, 2루 땅볼로 돌려세운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볼넷을 내준 뒤 모자를 고쳐쓰고, 마운드에서 가볍게 점프하는 등의 몸짓도 눈에 띄었다.

이튿날인 5월25일에는 프로축구 승부조작 파문이 전 스포츠계를 발칵 뒤집어놨다. 박현준이 이날 이후 경기조작을 모의했다면, 'K리그 충격파'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볼넷을 내줬다는 말이다.


하지만 박현준의 의심경기 중 하나인 6월9일 잠실 한화전에서는 선두타자부터 볼넷이 나왔다. 강동우와 승부 때 볼카운트 1-2에서 던진 4구와 5구가 바깥쪽과 몸쪽으로 멀리 벗어났다. 그런데 3경기에서는 1회 볼넷이 없었다. 당시는 프로축구 승부조작 사건이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영구제명 등의 조치가 잇달았던 시기다.

8월 이후엔 1회 볼넷이 급증했다. 김성현이 LG로 이적한 뒤라 함께 1회 볼넷을 모의했을 가능성이 높은 시기다. 8월7일 잠실 한화전 역시 상대는 1번타자 강동우였다. 초구 높은 공이 파울이 된 뒤 공 4개가 모두 스트라이크존에서 멀리 벗어났다. 공을 던질 때마다 이상하다는 듯 모자를 고쳐썼고, 마지막 공이 볼 판정을 받자 구심을 향해 억울하다는 표정까지 지었다. 이후 박현준은 팔꿈치 통증으로 2군에 내려갔다 보름여만에 올라왔다. 9월 두 경기에서 추가로 1회 볼넷이 나왔다.

5월24일 두산전, 6월9일 한화전, 8월7일 한화전의 공통점이 있다. 상대 선발투수들(홍상삼, 양 훈, 유창식)이 모두 제구가 좋다고 평가받는 투수들이 아니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고배당을 위한 브로커들의 노림수였을까. 어느 시점이건 박현준에게 'K리그 학습효과'는 없었던 것 같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지난해 9월4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홈경기에서 1회초 롯데 손아섭에게 볼넷을 내준 뒤 아쉬워하고 있는 LG 박현준.
조병관 기자 rainmaker@sportschosun.com/2011.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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