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형 박찬호, '윷놀이 오버액션'을 한 사연

최만식 기자

기사입력 2012-01-25 13:51 | 최종수정 2012-01-25 13:52


박찬호가 설날 맞이 윷놀이 대항전에서 윷을 던지고 난 뒤 한호하고 있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일부러 오버 한겁니다."

24일(한국시각) 미국 애리조나 투산의 한화 선수단 숙소에서는 윷놀이 한판이 벌어졌다.

전지훈련지에서 민족의 명절 설날을 맞았으니 고국의 향수를 조금이나마 달래기 위해 마련된 그들 만의 잔치였다.

이날 잔치에서 표정연기, 오버액션의 '달인'은 돌아온 스타 박찬호(39)였다.

어린아이처럼 함성을 지르며 만세를 부르고, 조마조마한 듯 가슴을 움켜쥐는가 하면 울상을 짓기도 하는 등 '천의 얼굴'이었다.

구단 프런트 등 주변 사람들의 눈에는 점잖게 관조하는 자세를 취할 줄 알았던 미국 스타일의 박찬호가 아니었다.

팀내 최고령 선배의 체통은 온데간데 없었고, 윷놀이 한판에 목숨을 건듯 '오버액션'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게 현지 목격자들의 전언이다.


윷놀이에 '망가진(?)' 박찬호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름대로 의도된 깊은 뜻이 숨어 있다.

한화 관계자는 "박찬호가 일부러 오버액션을 하며 분위기를 주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윷놀이 대전은 고된 훈련 스케줄 가운데 모처험 얻은 친선 도모의 무대였다. 선수들이 격의 없이 흉금을 털어놓을 수 있는 기회다.

이번 스프링캠프를 통해 후배들과의 친화력 도모를 우선 목표로 잡은 박찬호에게는 절호의 찬스였다.

그렇지 않아도 나이 차가 많은 후배들이 여전히 자신을 어려워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쓰였던 박찬호다. 훈련으로 빠듯한 합숙생활이라 스킨십을 강화하는데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보이지 않는 담을 더 낮추기 위해서는 계급장 떼놓고 즐기는 '놀이' 만한 게 없다. 체면을 따지면 안된다. 그냥 형님-동생, 동료일 뿐이다.

박찬호는 이 사실을 잘 알았고, 제대로 이용했다. 윷가락 하나 하나에 희비가 엇갈릴 때마다 작심한 듯 먼저 나서 '추임새'를 놓았다.

괴성을 지르고, 하이파이브를 권하고, 얼굴을 감싸쥐는 등 박찬호의 옆집 아저씨같은 '몸개그'에 후배들도 순식간에 동화됐다고 한다.

한대화 감독 등 코칭스태프는 박찬호의 '오버액션'이 다른 이유로 고마웠다.

사소한 윷놀이판이지만 강한 승부 근성과 집중력을 보여준 박찬호가 젊은 투수들에게 자극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 감독은 허슬플레이에 능한 한상훈을 주장으로 임명하는 과정에서 그랬듯 다른 팀에 비해 경험이 부족한 한화의 젊은 선수들이 근성있는 야구로 무장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런 점에서 박찬호가 '놀이'라고 대충 임하지 않고 승부를 향한 강한 집착력을 보여준 것은 훌륭한 '산교육'이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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