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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한국시리즈 1차전. 삼성이 2-0으로 앞선 가운데 SK의 8회초 공격 2사 1루. 마무리투수 오승환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이때 취재진 분위기. '경기 끝났다.' 오승환은 1⅓이닝 무실점 세이브.
지난해 10월15일 한국시리즈 1차전. 삼성이 3-2로 역전한 가운데 SK의 5회말 2사 만루 찬스. 이때 마운드로 올라오는 오승환. 당시 취재진 분위기. '응? 오승환이 이 타이밍에?' 오승환은 밀어내기 볼넷과 적시타를 허용하며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했다.
그가 시리즈 1차전의 최대 고비에서 투입되자 상당수 전문가들이 놀랐던 것이다. 오승환의 구위에 대한 신뢰감이 야구팬들 사이에서도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오승환은 초구에 슬라이더를 던졌지만 원바운드볼이 되면서 불안해보였고, 결국엔 구원에 실패했다.
현재의 오승환은 1년전과 180도 달라져있다. 그가 나오면, 그 순간 상대 타자들이 더 긴장하는 것 같다. 직구가 날아오는 걸 알면서도 못 친다. 가장 좋았던 2006년의 모습으로 완벽하게 되돌아간 것이다.
오승환은 왜 평범한 투수가 됐었나
2005년 데뷔 첫해 중반부터 마무리투수로 자리잡은 오승환은 2006년에 47세이브, 2007년에 40세이브, 2008년에 39세이브를 기록하며 '끝판대장'으로 입지를 굳혔다. 연속해서 1점대 방어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휴식 없이 너무 힘든 일정을 소화하면서 2009년부터 오승환은 이상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2009년에 19세이브, 방어율 4.83을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4세이브에 방어율 4.50을 기록한 뒤 일찌감치 시즌을 접었다.
그에 앞서 오승환의 오프시즌 및 대표팀 차출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5년말 코나미컵 출전, 2006년 2월 제1회 WBC, 2006년말 도하 아시안게임, 2007년말 베이징올림픽 지역예선, 2008년 8월 베이징올림픽 본선, 2009년 2월 제2회 WBC 등 그야말로 바쁜 일정이었다. 데뷔후 편안하게 쉰 오프시즌이 거의 없었다.
이같은 빡빡한 일정과 2009년부터 오승환이 내리막길을 탄 것을 연관지을 수 있을 것이다. 거칠거칠했던 오승환의 돌직구는 파도에 씻기면서 표면이 매끄러운 조약돌이 돼버렸다.
부진-부상-재활의 반복
2009년 6월. 오승환은 심상치 않았다. 24일 한화전에서 17세이브째를 따냈다. 세이브 페이스를 괜찮았다. 그런데 이날까지만 7개째 피홈런을 기록했다. 당시 방어율은 4.76. 실로 오승환답지 않은 수치였다.
그로부터 한달 뒤, 결국 오승환은 어깨 근육이 약간 찢어졌다는 진단을 받는다. 7월16일 두산전에서 1점차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패전투수가 된 다음날 이같은 사실이 발표됐다. 평소 마운드에서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 오승환이 당시 공을 던지지 못해 머뭇거리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후 오승환은 역시 어깨 회전근 부상을 한 안지만과 함께 경기도 용인의 삼성트레이닝센터에서 재활 훈련을 했다. 하지만 정규시즌 등판은 더이상 없었다. 9월20일에 갑작스레 1군 엔트리에 올랐지만 그건 '유령 로스터'였다. 자유계약선수(FA) 연간 등록일수를 채워주기 위한 당시 선동열 감독의 배려였다. 곧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최악의 2010년
2010년에도 오승환은 개막후 한달여만에 오른쪽 허벅지 앞쪽 근육을 부상했다. 또한번의 재활이 시작됐다. 당시 삼성 코칭스태프는 "오승환이 지난해 어깨 부상에서 회복한 것에 만족하면서 피칭때 힘이 너무 들어간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엔 허벅지가 아픈 것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6월5일 1군에 복귀한 뒤 6월16일 사직 롯데전에서 최악의 경험을 하게 된다. 7-6으로 앞선 9회말 2사후 등판했다. 역시 감독의 배려였다. 아웃카운트 하나만 잡으면 끝나는 상황. 롯데 이대호에게 6구째를 던진 뒤 오승환은 곧바로 주저앉았다. 동점 솔로홈런을 허용한 것이다. 시즌 세번째 블론세이브였다. 당시 다른 팀 코치들은 "최근 몇년간 오승환 만큼 많이 던진 마무리투수가 어디 있나. 대표팀에도 계속 불려갔다. 멀쩡한 구위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6월18일 오승환은 또 2군으로 내려갔다. 팔꿈치가 아팠고 직구 스피드도 나오지 않았다. 포심패스트볼 구속이 140㎞에도 미치지 못했다. 1년전 어깨 부상이 허벅지 부상을 불렀고, 그후 팔꿈치 통증으로 이어진 케이스였다.
수술과 재활, 그리고 오기로 이뤄낸 부활
그렇게 2군에 내려간 오승환은 7월에 오른쪽 팔꿈치 뼛조각 제거수술을 받았다. 대학 시절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 오승환은 "이번 뼛조각 제거 수술이 훨씬 더 아팠다. 팔꿈치에 구멍을 8개나 뚫고 수술받았다. 뼈를 깎는 고통이 뭔지 알게 됐다"며 웃었다.
당시 선동열 삼성 감독은 계약기간이 4년 넘게 남아있었다. 덕분에 오승환에게 충분한 휴식과 재활기간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오승환은 삼성트레이닝센터에서 계속 재활에 몰두했다. 그리고 4개월만에 한국시리즈에선 일단 실패했다. 하지만 구위 자체가 나빴다기 보다는 실전 감각이 너무 떨어진 상태였던 게 더 큰 이유였다.
오승환은 지난해 12월 몇몇 동료들과 함께 일찍 괌 전훈캠프를 떠났다. 따뜻한 곳에서 훈련하면서 다시 건강한 팔을 만드는세 성공했다. '한국에서 2002년 월드컵이 열리는 지 잊고 있었다'는 일화에서 보여지듯, 오승환은 엄청난 집중력으로 재활에 성공했다. 그리고 올해 '잃어버린 2년'을 되찾는 동시에 정규시즌 MVP 후보에 오를 만큼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그렇게 오승환은 컴백했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