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이대호는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슬러거다.
타점 능력이 있는 이대호에게 번트 사인을 내기란 쉽지 않은 결정이다. 롯데 양승호 감독은 정규시즌 이대호에게 단 한번도 번트 사인을 낸 적이 없다. 이대호는 평소 번트를 댈 일이 없어 번트 자체에도 익숙하지 않다.
타석엔 이대호가 나왔다. 양 감독 입장에선 참으로 고민스러운 상황. 차라리 이때는 다른 타자였으면 감독의 선택은 쉽다. 무조건 번트를 지시하면 된다. 일단 주자를 2루에 보내는 게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대호다. 번트 사인은 결국 나오지 않았다. 양 감독은 이대호가 번트에 익숙하지 않은데다 앞선 타석에서 볼넷과 안타를 기록한 점을 고려한 듯 했다. 아울러 앞선 1,2차전에서 SK가 이대호를 상대하던 모습을 역으로 이용하겠다는 의도가 묻어났다. SK 투수들은 이대호를 상대로 주자가 없을 땐 정면 승부를 했지만, 반대로 주자가 있을 땐 철저하게 유인하는 볼을 던졌다. 따라서 선구안이 좋은 이대호가 유인공을 잘 참아낸다면 번트 없이도 무사 1,2루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SK 두번째 투수인 왼손 박희수는 초구에 헛스윙을 한 이대호를 상대로 연속 볼 3개를 던졌다. 이대호를 피하겠다는 의도가 비쳤다. 그러나 5구째 뚝 떨어지는 커브로 스트라이크를 잡더니 풀카운트에선 시속 135km짜리 몸쪽 낮은 스트라이크를 꽂았다. 이대호는 방망이를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당했다. 구속이나 코스를 고려하면 상당히 위험한 공이었지만 이대호를 상대로 수싸움에서 허를 찌르며 승리하는 모습이었다. 이후 롯데는 계속된 1사 1루에서 홍성흔이 헛스윙 삼진을 당하는 순간 1루 주자 전준우마저 도루 실패로 아웃되면서 최고의 중심타선 앞에 차려진 마지막 기회를 허망하게 날리고 말았다.
만약 롯데가 이대호의 타석 때 번트 작전을 펼쳤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이대호가 번트 확률이 낮다면 대타를 고려할 법도 했다. 번트 작전이 성공했다면 1사 2루. 홍성흔과 강민호에게 해결하도록 기회를 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경기였다.
인천=신창범 기자 tigge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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