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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루를 내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투수 리드를 잘 하면 실점은 막을 수 있잖아요."
심광호는 지난 24일 주전포수 조인성이 2군으로 내려가자 1군의 부름을 받았다. 시즌 초반 주키치와 찰떡 궁합을 과시하며 전담 포수로도 나섰지만, 지난 6월18일 2군으로 내려간 뒤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했던 그다. 심광호는 지난 26일 대전 한화전부터 주전 마스크를 썼다. 공교롭게도 넥센과의 3연전을 모두 뺏긴 직후였다. LG는 이날 1대1로 무승부를 거뒀지만, 다음날부터 연승 가도를 달렸다. 연승 기간 내내 LG 안방에는 심광호가 있었다.
심광호는 31일 인천 SK전에서는 공수에서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LG는 선발 리즈가 어깨 통증을 호소해 2회말 1사 후 롱릴리프인 유원상을 급하게 마운드에 올렸다. 몸도 채 풀리지 않은 상황. 심광호는 마운드에 오른 유원상을 진정시켰다. 둘은 2006년과 2007년 한화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사이. 유원상이 지난 7월 LG로 트레이드된 뒤 2군에서 오랜만에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심광호는 "원상아, 걱정하지 말고 형만 믿고 편하게 던져라. 오늘 형이랑 LG에서 첫 승 한 번 만들어보자"라면서 긴장한 후배를 다독였다.
사실 2군에서 농담으로 "LG에서 첫 승을 함께 하자"는 말을 주고 받았던 둘이다. 정말로 기회가 찾아온 것. 심광호는 연습투구를 하는 동안 유원상이 던질 수 있는 모든 공을 다 요구했다. 심광호는 이날 경기가 끝난 뒤 스포츠조선과의 전화통화에서 "연습투구 10개를 하는 동안 별 생각을 다했다. 갑작스러운 등판이다 보니 일단 좋은 공부터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유원상은 몸이 덜 풀려서인지 직구 구위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일단 변화구 위주로 완급조절을 하면서 2회를 마쳤다.
공을 받다보니 볼배합에 대한 또다른 확신이 들었다. 심광호는 "원상이가 평소에 체인지업을 많이 던지지 않는데, 2군에서 받아봤던 게 생각났다. 체인지업을 몇개 요구했는데 제구가 좋았다. 결정구는 아니었지만 카운트를 잡는데 효과적으로 써먹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곧이어 "SK가 전력분석이 워낙 좋은 팀 아닌가. 그동안 안 던지던 공을 던지면 SK 타자들과도 쉽게 승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유원상은 심광호와 안정적인 호흡을 과시했다. 이닝을 거듭할 수록 직구 구위도 살아났고 4⅓이닝 무실점으로 397일 만에 승리투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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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광호는 "사실 스프링캠프 때부터 3루 쪽으로 기습번트하는 것을 많이 연습해뒀다. 언젠가 한 번 제대로 써먹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며 미소지었다. 벤치 작전은 아니었다. 이닝이 시작되기 전 김인호 코치를 잠시 바라봤다. 멀리서 눈빛만 교환했지만, 번트 타이밍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타석에 들어서기 전 3루 쪽을 힐끔 바라봤다. SK 3루수 최 정은 평소와 비슷한 위치에 서있었다. 작전은 대성공. 1루까지 전력질주해 살아나간 것은 물론, 다음 타자 이대형의 번트 때도 2루에서 세이프됐다. 오랜만에 슬라이딩이어서일까. 손과 팔 부위가 쓸리는 상처를 입었지만, 아픔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팀에 도움이 된 것이 한없이 기쁠 뿐이었다.
심광호는 이날 8회까지 마스크를 쓴 뒤 9회 교체됐다. 도루를 한개 허용하긴 했지만 경기 내내 실점은 없었다. 경기가 끝난 뒤 난생 처음 수훈선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그는 "방송에서 이런 인터뷰를 시작한 뒤로는 처음 경험했다. 사실 원상이가 수훈 선수가 되고 내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데 당황스러웠다"면서 "부모님께서 어떻게 소식을 아셨는지 경기가 끝나고 전화도 주셨다. 야구도 잘 못하는 못난 아들인데 항상 응원해주시니 너무 감사하다"라며 기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사실 심광호는 도루 저지 능력을 제외하고는 수준급의 포수다. 과거 팔꿈치 수술을 받은 탓에 송구 능력이 조금 떨어졌다는 평. 하지만 그는 마운드에서 쉽게 흥분하는 주키치도 안정시킬 수 있는 포수다. 이날 역시 긴장한 유원상을 따뜻하게 감싸 안으며 최고의 피칭을 이끌어냈다. 심광호는 "팔꿈치도 문제지만, 도루 저지는 자신감의 문제인 것 같다. 경기에 많이 나서지 못하면서 내 스스로 위축된 부분이 있다. 하지만 도루를 내줘도 투수 리드를 잘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투수가 다음 타자를 막아낼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내 임무가 아닌가"라고 힘주어 말했다. 아직 완전한 주전은 아니지만, 그의 말에서 조금씩 자신감이 느껴졌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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