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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환 타임'은 이제 하나의 상품이 돼가는 느낌이다.
오승환 타임
메이저리그에선 통산 601세이브를 기록한 트레버 호프만의 '트레버 타임'이 있었다. 지옥의 종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트레버 호프만의 모습은 엄청난 위압감을 느끼게 했다.
TV 중계에선 대부분 광고가 나오는 시간이라 시청자들이 오승환의 테마송을 제대로 듣기 어렵다. 현장에 있어본 팬이라면, 이같은 분위기가 발산하는 위엄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상당수 마무리투수들은 구단에서 테마송을 쓸 것이냐고 물어볼 때 고개를 가로젓는다. "실컷 멋은 다 내고, 마운드에 올라가자마자 두들겨맞으면 그게 무슨 창피냐"라는 답변이 많다. 그만큼 마무리투수는 큰 부담에 시달리는 보직이다.
오승환은 조금 다르다. 그는 현 테마송에 대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자신감이 없다면, 그 역시 테마송 채택을 거부했을 것이다. '오승환 타임'은 훗날 프로야구에 마무리투수의 상징과 같은 의미로 남게 될 것 같다.
오승환 타임과 선동열 타임
최고의 마무리투수를 거론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선동열 현 삼성 운영위원이다. 투수 선동열은 마무리로 돌아선 93년 10승3패31세이브를 기록했는데 최다세이브와 방어율왕을 차지했다. 방어율 1위가 됐다는 건 규정이닝을 채웠다는 의미다. 그해 126⅓이닝을 던져 방어율 0.78을 기록했다.
당시 선동열이 마운드에서 몸만 풀어도 상대가 경기를 포기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른바 '선동열 타임'. 그런데 야구인들은 '오승환 타임'과 '선동열 타임'에는 차이가 있다고 얘기한다.
마무리투수의 1이닝 피칭이 보편화된 요즘은, 팬들이 경기 스코어차와 흐름으로 오승환의 등판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다. 삼성이 3점차 이내로 앞선 9회가 되면, 기본적으로 오승환이 등판한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오승환 타임'은 7회 정도 되면 대충 윤곽이 나온다. 심지어 삼성 팬들은 '오승환 타임'을 보기 위해 "이제, 점수 그만 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반면 '선동열 타임'은 근본적으로는 없었다는 게 야구인들의 의견. 마무리투수가 126⅓이닝을 던진 것에서 알수 있듯, 투수 선동열은 그야말로 '아무때나' 나왔다. 할당이닝 개념이 드물었던 시대다. 7회쯤 일찌감치 마운드에 올라 던지기도 했고, 연투는 기본이었다. 심지어 너무 많이 던져 쉬기로 한 날에도 '시위 효과'를 위해 일부러 마운드에서 팔푸는 시늉을 했다는 것도 유명한 얘기다. 지금은 그때처럼 페이크까지 동원하지는 않는다.
당시를 기억하는 모 코치는 "'선동열 타임'이란 없었다. 워낙 아무때나 등판했고 그때마다 잘 던졌기 때문이다. 일단 등판하면 상대팀은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또다른 코치는 "직접 타자로서 상대했을 때 직구는 못 치겠더라. 어쩌다 직구 타이밍에 나가다 슬라이더가 걸려서 안타를 기록한 적은 있다"고 말했다.
오승환과 현역 시절의 선동열 위원은 모두 최고의 투수다. 다만 시대 상황이 달랐다. 그래서 '오승환 타임'은 명확하고, '선동열 타임'은 언제가 될 지 알 수 없었다는 표현이 나오는 것이다.
대구=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