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LG 마무리 투수다."
마지막 타자를 잡는 순간 송신영의 가슴속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경기후 송신영은 "2004년 한국시리즈 등판 이후 가장 많이 떨면서 공을 던졌다"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지금까지 송신영의 야구 인생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았다. 지난 13년 동안 가장 비중있는 배역을 맡았기 때문에 그 압박감은 클 수 밖에 없었다.
몸도 몸이지만 불펜 투수에 대한 평가가 인색한 시절이었던 만큼 정신적 스트레스도 많았다. 경제적으로도 윤택하지 못했다. 고려대 재학 시절 팔꿈치 부상으로 뚜렷한 활약이 없었다. 현대 입단 당시 2차 11번이었지만 계약금 없이 연봉 1800만원으로 시작했다.
고교 시절 강속구 투수였던 송신영은 스피드를 잃으면서 기회가 있을때마다 변화를 시도했다. 변화엔 반드시 노력이 뒷받침됐다. 스피드를 포기한 뒤 제구력에 힘쏟았다. 포수 미트만 보고 던졌다.
2006년엔 포크볼을 장착해 재미를 봤다. 최근들어 포크볼 위력이 떨어지자 커브를 연마했다. 지금은 이 커브가 송신영의 '필살기'가 됐다. 커브의 날을 세운 건 지난 겨울 플로리다 스프링캠프에서다. 여기서 송신영은 같은 커브라도 스피드를 달리하는 법을 손끝에 익혔다. 120km대와 130km대의 커브를 함께 던졌다. 이 커브가 스트라이크존에 꽂히면서 위력을 더 했다. 2일 SK 타자들을 돌려 세운 결정구도 바로 이 타이밍을 뺏는 커브였다.
송신영은 "140km 직구를 던졌다가 120km 커브를 던지면 타자들은 타이밍을 잡기가 쉽지 않다. 마무리 투수가 빠른 직구도 필요하지만 타자와의 타이밍 싸움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시즌 초반 만났던 송신영에게 팔 각도가 예전보다 많이 내려갔다는 이야기를 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어쩔 수 없다. 나이가 들면서 팔이 내려올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프로 선수에게 야구는 생존이다. 삶의 현장인 셈이다. 팔이 내려왔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팔이 내려오면 그것에 맞춰 또다른 생존법을 찾아야 하는 게 프로라고 생각한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는 프로였다.
신창범 기자 tigge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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