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수 서바이벌 프로그램 우승…"후련하면서도 허전…내겐 잘 맞는 경연"
국립무용단 최연소 입단해 주역 활약…"대중과 순수예술 접점 되고 싶어"
(서울=연합뉴스) 박원희 기자 = '무용의 신, 무용수들의 무용수, 한국 1등, 피지컬 괴물….'
엠넷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테이지 파이터'(이하 '스테파') 우승자 최호종(30)을 수식하는 말들이다. '최호종 보유국'이 됐다며 그를 상찬하는 말들도 쏟아진다. 하지만 그는 '무용의 신'이 아닌 '춤을 사랑하는 무용수 중 한명'이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최호종은 최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실력이 많이 조명되지만 저의 가장 큰 무기로 생각하는 것은 무대에 올라가는 자세"라고 말했다.
"제 기량이 주목받는 것은 물론 감사한 일이죠. 좋은 평가를 받아 기분이 좋기도 합니다. 그 원천은 무대에 오를 때 엄격한 마음가짐인 것 같아요. 아직도 제가 예술가일까 싶어요. 그 기준이 높습니다."
◇ "스테파 종영, 후련하면서도 허전"…직접 짠 안무 화제
최호종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건 '스테파'다. '스테파'는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 등을 전공한 무용수들이 '퍼스트', '세컨드', '언더' 등의 계급을 오가며 춤을 겨루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한국 무용 전공자로 출전한 그는 프로그램 시작부터 끝까지 '퍼스트' 계급을 유지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스테파'를 끝낸 소감을 묻자 "많이 후련하다"면서도 "매일 있던 서바이벌의 긴장감이 없으니 허전하고 아쉽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게 잘 맞는 경연이라고 생각했다"며 "미션이 다양해 제가 가진 몸의 언어를 꺼내서 재조합해 써야 했는데, 거기에 잘 맞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그가 경연에서 보여준 안무는 많은 화제를 모았다. 그가 직접 안무를 짠 '영원한 악몽'이 대표적이다. 메가 스테이지 오디션 때 보여준 발 구르기 안무는 그에게 '작두핑'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그는 "('스테파'를) 전쟁터에 비유했다"며 "전쟁에 나가려면 총알이 많이 있어야 하는데, 평소에 개인 연습을 하면서 리서치를 많이 해두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로 책 등의 텍스트를 통해 안무의 영감을 얻는다. 일기를 쓰며 생각을 정리하기도 한다. 그렇게 쌓아온 자양분은 현장에서 발휘된 창의성과 결합해 미션에서 빛을 발했다.
그의 머리 스타일도 화제였다. 가르마를 타 이마 양쪽으로 길게 내려뜨린 모양은 팬들 사이에서 '홍합머리'라고 불렸다.
"머리를 담당해주시는 미용사분이 홍합머리로 불리는 것에 슬퍼하셨어요. '홍합이 아니다, 커튼 헤어라고 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너무 늦은 것 같다고 했죠.(웃음)"
◇ 치유 위해 무대 활동 시작…춤으로 열등감 극복
그가 처음 무대에 오른 장르는 무용이 아닌 연극이었다.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고등학생 때 치유를 목적으로 극단에 들어간 것이 계기였다. 그는 무대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무대에 대한 꿈을 갖게 됐다.
그러던 중 연출 선생님의 권유로 고등학교 3학년 때 한국무용으로 진로를 정했다. 한국무용이 다른 무용보다 늦은 나이에 시작하기 적합하고 그의 정서에 어울린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는 "무용수는 몸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뮤지컬, 연극보다) 그 언어를 해석하는 데 모호한 점, 상상의 폭이 넓어진다는 점이 좋았다"며 "한국무용을 시작할 때 국립무용단 공연을 봤는데 너무 아름답고 경이로워서 공연 보고 바로 연습실로 가서 그걸 따라 했다"고 떠올렸다.
그러나 시작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대학에 들어온 동기들은 이미 완성형의 무용수여서 따라잡기 벅찼다. 남들보다 노력을 더 많이 하는데도 격차를 메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 그가 열등감을 극복한 계기는 쉬지 않고 춤을 춘 어느 날이었다.
"6시간을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춤을 췄던 것 같아요. 너무 간절하고 지금 가진 압박감을 견디지 못해 그런 선택을 했어요. 춤을 추면서 '내가 왜 춤을 시작했지', '왜 무대에 서고 싶어 하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등의 질문이 찾아왔고 그 안에서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무언가를 얻게 된 것 같아요."
◇ 국립무용단 주역 활약…"예술가는 끊임없이 거듭나야"
그 경험은 최호종의 무용에 전환점이 됐다. 열등감이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뀌었다. 2016년 한국 무용계 최고 권위 대회 동아무용콩쿠르에 출전해 처음으로 금상을 탔다. 경쟁을 의식하지 않고 행복하게 췄던 공연으로 그는 기억한다. 해당 공연을 촬영한 유튜브 영상도 관심을 모아 현재 조회 수가 50만회를 넘는다.
이후 국내 대표 무용단체 국립무용단에 최연소로 입단했다. '더 룸', '호동', '사자의 서' 등 다양한 작품에서 국립무용단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그는 8년간 이어온 국립무용단 활동을 올해 멈췄다. 한국무용뿐만 아니라 현대무용, 스트리트댄스 등 동시대 모든 춤을 추는 무용수를 다음 단계로 그리며 복합예술단체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AL)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예술가는 끊임없이 탈피하고 거듭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며 "몸의 언어가 기능적으로 잘 수행되는 것뿐만 아니라 나이에 맞게, 내가 경험하고 사유한 것들에 맞게 끊임없이 거듭나고 변화하는 게 제가 생각하는 예술관"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용과 대중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데도 관심이 많다. 그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영상을 올렸던 이유이자, '스테파'에 출연한 계기이기도 하다.
최호종은 이를 '무용의 대중 예술화'라는 말로 표현했다. 대중에 어필되는 작품만을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작품의 완성도를 추구하며 대중과의 접점을 찾아간다는 의미다.
'스테파'의 최종 무용수 12인으로 구성된 글로벌 댄스 컴퍼니 'STF 무용단'도 그 연장선에 있다. 그는 STF 무용단 수석 무용수로서 전국 투어를 앞두고 있다. 투어에서는 '스테파' 방송에 나왔던 작품들이 모두 공개될 예정이다.
그는 "순수 예술로서의 무용도 계속해나가고 STF 무용단으로서 대중과 만나는 접점도 가져가고 싶다"며 "예술관에 대한 탐구도 꾸준히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끊임없이 정진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그에게 '꿈의 무대'는 본인의 마지막 무대다.
"저는 죽을 때까지 춤추고 싶은 마음이, 무대에 서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꿈의 무대가 있다면 제 마지막 무대가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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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