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나유리 기자]"처음으로 몸의 스피드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을 느꼈어요. 그때 처음 은퇴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SSG 랜더스 이명기 코치는 '초보' 코치다. 올해까지 선수로 뛰었지만, 시즌이 끝난 후 미련없이 은퇴를 선언하며 지도자로 변신했다.
돌고, 돌아 다시 친정팀으로 왔다. 2006년 SK 와이번스(현 SSG)에 인천고 출신 고졸 신인으로 입단했고 10년간 뛰었다. 그리고 2017시즌 초반 KIA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되면서 새로운 길이 열렸다. 그해 KIA의 통합 우승에 주역 멤버로 활약하며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이후 다시 NC 다이노스를 거쳐 2023시즌을 앞두고 FA 계약을 맺어 한화 이글스로 이적했다. 한화에서 2시즌을 뛴 이명기는 부상과 부진이 겹치며 1군 출전 18경기에 그쳤고,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에 대한 미련은 없다. 이명기 코치는 "작년에 다쳐서 거의 1년을 쉬었다. 그러고나서 몸의 스피드나 이런게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을 운동하면서 처음으로 느꼈다. 뛰는거나 배트 스피드 떨어지는걸 느꼈다. 2군에서 어린 선수들과 같이 뛰는데, '이제 안된다'고 느꼈다. 후반기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며 은퇴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덤덤하게 돌이켰다. 그는 "저는 어렸을때도 훈련양 많은 팀에서 뛰었고, 운동도 정말 많이 해보고 경기도 많이 나가봤다. 아직까지는 아쉽지도 않고, 막말로 방망이 잡기도 싫다"며 웃었다.
한화에서 은퇴한 후 친정팀 SSG에서 코치로 첫 발을 뗐다. 타팀에서 제안도 있었지만, SSG에서 연락이 오자 주저 없이 인천행을 택했다. 고향이자 가족들이 사는 곳 그리고 신인 시절 10년간 뛰면서 애정이 묻었던 팀이라는 이유가 컸다.
코치진 합류 후 이명기 코치는 유망주급 위주로 꾸려진 일본 가고시마 마무리캠프에서 강병식 타격코치를 보조하는 역할을 맡았다. 야구 선배이자 가장 최근까지 현역으로 뛰었던 형으로서 어린 선수들에게 친근한 조언들도 아끼지 않았다.
이명기 코치는 "올해 한화 2군에서 오래 있으면서, 정말 오랜만에 퓨처스리그를 많이 뛰었다. 어린 후배들을 지켜보면서 저 어렸을때 생각도 많이 났다. 제가 생각했을때는 제가 그 나이일때보다 지금 후배들이 잘하는 것 같은데, 자리를 못잡고 있으니 안타깝더라. 좋은 것을 굉장히 많이 가지고 있는데 그걸 보여주지 못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때 지도자가 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전까지는 코치가 되고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고 코치로 변신한 배경을 밝혔다.
"코치들이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많은 것들을 준비하는지 몰랐다"며 혀를 내두른 신입 코치는 '디테일 끝판왕' 강병식 코치에게 많은 것들을 배우면서 첫 캠프를 무사히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는 "강병식 코치님은 오래 코치 생활을 하셔서 아는 것도 많고, 타격에 대한 지식도 정말 깊으시다. 그래서 많이 배운다. 또 기술 뿐만 아니라 선수들에게 다가가는 방법도 많이 알려주신다. 저는 아직 선수 티를 못벗어서 직설적으로 말을 하는 편인데, 코치님이 부드럽게 다가가는 방법에 대해 직접 보여주신다. 저도 정말 도움이 많이 된다. 저는 정말로 이번 캠프에 온 것에 대해서 잘했다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코치들의 캠프 일과는 하루종일 정신이 없다. 투자하는 시간만 보면 선수들보다 더 긴 시간을 쏟아야 한다.
이명기 코치는 "생각보다 일이 많다. 훈련 앞뒤로 1시간씩 일찍 나오고, 늦게 들어간다. 또 훈련이 끝나고도 선수때는 쉬면 되는데, 다음날 훈련 스케줄 회의도 해야하고 이런 일들이 많다. 하지만 저는 힘든 것은 모르겠다. 피곤한건 있는데, 진짜 힘든건 운동하는 선수들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그냥 다 새롭고 재미있다"면서 코치로 참가한 첫 캠프에서 느낀 가장 놀라운 에피소드를 꺼냈다.
그는 "처음에 캠프 시작할때 이숭용 감독님께서 타격 몇몇 선수들에게 타격 자세에 대해 주문하신 게 있었다. 처음에는 선수들이 너무 자세가 안나왔다. 하체 턴에 대한 것이었는데 감독님이 시범을 보여준 후 저한테 교정을 시키라고 하시는데, 선수들이 전혀 따라하지 못했다. '애들 몸이 안되는데 대체 어떻게 만들려고 저러시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깜짝 놀랐다. 선수들이 바뀌더라. 가르쳐주고 교정해주고 피드백을 해주니까 선수들이 정말 달라지더라. 감독님이 원하셨던 자세가 100%는 아니더라도, 거의 비슷하게 하는걸 보고 굉장히 놀랐다"며 코칭의 효과를 몸소 체험했다.
20년 가까이 선수 생활을 하며 많은 코치, 감독들을 겪었고 또 느꼈다. 이명기 코치는 "자리를 잡은 후에는 자기가 알아서 하기 때문에 코치가 중요하지 않더라. 그런데 어렸을때는 지도자를 잘 만난다기 보다, 못 만나면 안된다. 잘못 만나서 잘못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면서 "기술적인 부분은 1군 선수나 2군 선수나 종이 한장 차이라고 생각한다. 안될때 이겨내는 능력도 중요하기 때문에 선수들에게도 눈 똑바로 뜨고 이겨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마음이 약한 선수들이 많더라. 다들 잘 이겨내서 정말 잘했으면 좋겠다. 지금 나는 그런 마음"이라며 선수들을 진심으로 격려했다.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