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용 기자] 1승2패 팀이, 28연승 도전 팀을 꺾고 우승할 수 있는 게 야구.
대만 입장에서는 '기적의 승리'였다. 일본 입장에서는 '도쿄돔 참사'였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었던 프리미어12 결승전이었다.
대만이 '대형 사고'를 쳤다. 대만은 24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프리미어12 결승전에서 일본을 4대0으로 완파하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대만 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결승전. 그 신경전이 모든 결과를 바꿔버렸을지도 모르는 한판이었다.
사실 객관적 전력, 분위기는 일본의 압승이었다. 일본은 이번 대회 가장 강한 전력을 꾸렸고, 홈 도쿄돔에서 슈퍼라운드를 개최했다. 조별리그부터 슈퍼라운드까지 지는 법을 몰랐다. 국제대회 파죽의 27연승을 달렸다.
반대로 대만은 미국 마이너리그, 일본프로야구에서 뛰는 선수들이 성장한 모습을 보였지만 투-타 전력 모두에서 아직은 불안정한 모습이었다. 다른 팀들은 몰라도, 일본에는 한 수 아래인 게 분명했다.
하지만 결승전을 앞두고 작은 소용돌이가 쳤다. 대회 규정상 슈퍼라운드, 즉 4강에 오른 팀들이 한 번씩 경기를 치렀다. 그런데 이게 웬일. 대만, 미국, 베네수엘라가 얽히고 설켰다. 미국과 베네수엘라가 1승2패를 확정한 가운데, 대만과 일본의 마지막 경기가 남았다. 그런데 대만이 일본에 지더라도 결승에 올라가는 경우의 수가 확정됐다. 대만이 패해 일본 3승, 대만 포함 나머지 국가들이 1승2패를 거두면 TQB에서 무조건 대만이 앞서게 된 것이다.
대만은 일본을 이겨야 결승 진출을 할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해 에이스 린위민을 선발로 예고했다. 하지만 경기 전 결승 진출이 확정되자 급하게 선발 교체를 시도했다. 결승전에서 린위민을 쓰기 위해서였다.
일본은 처음 불쾌함을 표시했으나, 막을 방법이 없었다. 대회 규정이, 벌금 2000달러를 내면 선발을 바꿀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대신 일본은 마지막 야구로서의 상대 존중으로 좌완 린위민 상대 타순을 작성했으니, 선발로 좌완 투수를 내보내줄 걸 요청했고 대만도 이를 받아들였다. 이 경기는 일본의 승리.
3승팀과 1승2패팀, 큰 격차를 보인 두 팀이 하루 뒤 결승에서 다시 만나게 됐다. 부끄러운 결승 진출팀 대만. 하지만 비판과 벌금을 감수한 그 선택이 '신의 한 수'가 됐다. 린위민은 4이닝을 무실점으로 지워버렸다. 전력이 강한 일본을 상대로 초반 선취점을 내주면 어려운 경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대만인데, 린위민이 분위기를 바꾼 것이다.
그렇게 린위민이 호투하자 일본쪽도 스스로 말리기 시작했다. 결국 5회가 분수령이었다. 대만 린자정의 선제 솔로포에 이어 천제셴이 승리에 쐐기를 박는 스리런포를 터뜨리며 일본 에이스 도고를 무너뜨렸다.
과연 린위민이 이날 선발로 나오지 못했다면, 경기는 어떻게 됐을까. 확실한 건 홈팬들 앞에서 우승, 28연승을 거둬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일본 선수들이 예상치 못한 선발 변경과 에이스의 등장에 초반 긴장한 여파가 경기를 지배했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는 점이다. 이렇게 미묘한 변수로, 전력 차이를 뒤엎을 수 있는 게 야구다. 상대적으로 축구, 농구는 상대 전력을 이기기 매우 힘든 스포츠. 하지만 야구는 생각지 못한 투수의 호투, 생각지 못한 홈런 한 방에 결과가 바뀐다. 그래서 재밌다.
김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