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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느리면 어때, 내 삶의 쉼표…별빛 가득 '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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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 중 하나는 '느리게 사는 지혜'다. 일상에 치여 주변을 둘러보기 쉽지 않아 자신을 돌보는 것도 쉽지 않다. 느림이 만들어 낸 여유는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자양분이다. 이런 의미에서 무엇인가 하지 않아도 느린 여행을 떠나는 것 자체는 웰니스 활동에 가깝다. 관건은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이다. 완주는 여유로움이 넘치는 곳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지역 곳곳의 변화 자체가 더디다. 길어진 가을밤, 쏟아지는 별빛과 함께 한 시간. 자연의 정취에 취하고, 여유로움을 충전하는 데 하루면 충분하다. 인생 예찬을 위해 떠나는 힐링 여행지, 완주다.

'별빛주막:소양점' 다시 만나요

생각보다 가깝다. 전주와 익산, 대전 등 교통 거점도시와 연결성이 뛰어나다. 까마득히 멀것만 같았던 완주까지 이동시간은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서울 기준 3시간 안팎이다.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짧게 느껴지는 건 시시각각 변하는 주변 풍경 때문이다. 높은 건물과 우뚝 솟은 산을 시작으로 넓게 펼쳐진 평야까지 마주할 수 있는 풍경이 가득하다. 게다다 마을에서 피어오르는 밥 연기는 요즘 보기 드문 모습이다.

완주는 사계절 제각각 매력적이지만, 밤이 깊어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늦가을이 제격이다. 이른 밤하늘을 수놓는 수많은 별빛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고 있는 건 땅만 바라보며 바쁘게 사는 현대인에게 최고의 힐링이다. 날씨는 걱정할 필요 없다. 남쪽에 있어 쌀쌀함도 덜하다.

완주에선 최근 별빛과 함께하는 축제가 열렸다. 지역주민이 모여 야간경관을 조성하고 한옥과 미디어를 결합한 첫 야간 축제 '별빛주막:소양정'이다. 야간 축제는 지난 11월 15일 금요일 오후 4시부터 10시까지 오성한옥마을 일원에서 진행됐다. 버스킹, 난타공연, 미디어아트쇼, 현대무용, 대금연주, 라이브콘서트, 뮤직뱅크 타임 등 다양한 볼거리와 푸드존, 플리마켓, 포토존, 야간경관 산책길도 즐기는 자리였다. 축제는 끝났지만, 완주 오성한옥마을 일원에 쏟아지는 별빛은 지금도 그 자리에서 방문객을 반긴다.

오성한옥마을은 종남산, 서방산, 위봉산 등 울창한 산림과 맑은 계곡, 호수가 있는 자연생태경관이 수려한 마을이다. 높고 낮은 지형의 형태에 맞춰 지어진 전통한옥들과 토석담장, 골목길 등이 고즈넉한 옛 정취와 정겨움을 더해준다. 전통방식의 시골밥상과 부꾸미 등 먹거리와 마을안길 걷기 및 생태 숲 체험을 즐길 수 있고, 한옥스테이와 오스 갤러리, 아원고택, 소양고택 등 느긋하게 머물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아원고택은 1층의 현대식 갤러리와 2층으로 올라가면 볼 수 있는 단아한 한옥의 정경이 아름다워 이곳을 찾는 이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만사 제쳐놓고 쉼을 얻는 곳'이라는 만휴당과 안채, 사랑채, 별채로 구성되는데, 안채와 사랑채는 진주의 250년 고택, 정읍의 150년 고택을 이축했다. 기본 뼈대는 살리고 서까래와 기와만 교체했다. 소양고택은 고창과 무안에 있던 180년 된 고택 3채를 해체하여 소양면에 이축한 한옥이다. 긴 시간 동안 문화재 장인들의 손을 거쳐 그대로 복원된 소양고택은 우리 고유의 전통미와 예술 콘텐츠가 담긴 한옥 문화체험관으로 재탄생했다. 오성한옥마을은 지난 2012년 한옥 관광지원화지구로 지정된 뒤 50가구 중 23채가 한옥과 고택으로 이뤄져 있어 드라마나 광고촬영 배경으로 사용되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방탄소년단(BTS)의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유명하다.

문화예술의 메카, '삼례'만의 '예전 느낌'

이른 아침부터 낮까지 옛 정취를 느끼기 좋은 곳, 삼례는 완주에서 시간이 멈춘 섬과 같은 곳이다. 단절의 의미가 아닌, 과거와 현대를 있는 만남의 섬. 연결 고리의 중심에는 문화와 예술이 있다. 2016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삼례책마을이 대표적이다.

삼례책마을은 책과 사람, 그리고 자연이 함께 어우러진 곳이다. 고서점과 헌책방, 북카페로 이루어진 북 하우스와 한국학아카이브, 전시와 강연시설을 갖춘 북 갤러리 등 세 동의 건물로 구성됐다. 특히 고서와 기록, 수집에 관심 있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보물 같은 완주 여행지다.

삼례책마을은 일제강점기부터 1950년대 사이에 지어진 양곡창고를 개조해 만든 공간으로 과거의 양식창고가 현재의 지식창고로 이어지고 있는 아주 의미 있는 공간이다. 양식창고가 지식의 창고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세미나, 전시회, 음악 공연, 북콘서트 등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지속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현재 삼례책마을 책박물관에서는 '전설의 DJ 김광한 팝송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에는 1960~90년대까지의 음반 8천여 장과 유명 가수 사진, 인터뷰 녹음테이프, CD, 방송원고, 음악 도서, 음향기기 등 2만여 점이 전시된다.

김광한의 방송 육성 녹음 파일을 다시 들을 수 있는 추억의 '골든팝스'도 상영한다. 전시는 2025년 4월 14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삼례 책마을 인근에는 삼례문화예술촌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은 양곡창고를 개조해 만든 복합문화공간으로 역사와 현대가 어우러지는 문화예술 공간이다. 수탈의 상징인 양곡창고를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탈바꿈시켜 역사적 의미와 문화가 공존하는 삼례만의 독특하고 절묘한 공간을 형성했다. 삼례문화예술촌은 1920년대 지어진 건물 양식과 흔적이 보존되어 있어 예술촌 내부 건축물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자연을 느끼는 시간 '위성폭포, 위봉사'

굳이 걷지 않아도 된다. 완주 위성폭포는 바쁘게 움직이지 않아도 절경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높이 60m의 2단 폭포로 여름철 시원스레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보는 이의 마음마저 시원하게 한다. 예부터 완산 8경에 드는 절경으로 유명하다. 도로에서 폭포 아래까지는 목재 계단 산책로로 연결돼 있어 쉽게 폭포에 다가갈 수 있다.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 깊은 계곡이 어우러진 위봉폭포는 비 온 뒤 물이 많을 때 더욱 좋다. 위봉폭포가 특별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이곳에서 우리나라 판소리 8대 명창으로 정조와 순조 때 활약한 권삼득 선생이 수련하며 득음의 경지에 올랐다고 한다.

위봉사는 위봉산성 안에 자리하고 있다. '추출산위봉사'라고 적힌 일주문과 사천왕문을 지나 위봉사 경내로 들어선다. 깊은 산속의 사찰인데도 마당이 평탄하고 널찍하다. 대웅전 용마루에는 청기와가 고색창연하게 박혀있다. 보광명전 앞에 서 있는 늙은 소나무 한 그루가 고찰의 품격을 말해준다. 비구니들만의 도량인 위봉사는 절제의 미학이 엿보인다. 사찰 내부 건축물의 배치나 공간 구성 어디에도 과장이나 허세가 보이지 않는다.

위봉산성은 1675년(숙종 1)에 7년에 걸쳐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전라감사 권재윤이 유사시에 전주 경기전에 있는 태조 영정, 조경묘의 시조 위패를 옮겨 봉안하기 위해 전주 근처에 험한 지형을 골라 성을 축조했다. 실제로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전주부성이 점령되자 영정과 위패를 이곳으로 옮겨놓기도 했다. 대둔산에서 늦가을의 여유로움을 즐기는 것도 완주의 매력이다. 대둔산은 해발 878m 우뚝 솟은 최고봉 마천대 아래로 끝없이 펼쳐진 바위 봉우리들의 자태가 수려하다.

정상 부근에 있는 금강구름다리는 대둔산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놓쳐서는 안 되는 명소. 금강구름다리를 건너면 약수정이 나오고 여기서 삼선줄다리를 타면 왕관바위로 간다. 봉우리마다 한 폭의 산수화로 그 장관을 뽐내는 대둔산은 낙조대와 태고사 그리고 금강폭포, 동심바위, 금강계곡, 삼선약수터, 옥계동 계곡 등 신의 조화로 이룬 만물상을 보는 듯 황홀하기만 하다.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쉽게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천등산 하늘벽, 신선암벽, 옥계동 양지바위에서는 대둔산 관리사무소를 통한 사전 신청을 통해 암벽등반도 가능하다.

김세형 기자 fax123@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