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대만)=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신비주의일까, 필승의 신념일까.
대만 쩡하오주 감독의 침묵 이유에 관심이 쏠린다. 쩡 감독은 12일(이하 한국시각) 타이베이 더 하워드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2024 WBSC 프리미어12 공식 기자회견에서 선발 투수를 밝히지 않았다. 그러다 행사 후 1시간여 뒤 WBSC를 통해 린위민(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이 선발 등판한다고 예고했다.
이날 대만 현지 매체들의 최대 관심사는 자국 대표팀의 선발 투수였다. 쩡 감독이 계속 침묵을 지키면서 물음표가 커졌다. 톈무구장, 타이베이돔에서 각각 현지 훈련에 나선 류중일호를 지켜보기 위해 현장을 찾은 대만 취재진들에게 선발 투수를 물을 때마다 돌아온 답은 "우리도 쩡 감독의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는 대답과 한숨이었다.
대다수가 린위민의 선발 등판을 예상했다.
린위민은 150㎞의 직구에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을 구사하는 좌완 투수. 올해 빅리그 등판은 없었지만, 애리조나 마이너팀 산하 더블A, 트리플A에서 104⅓이닝을 던져 3승6패, 평균자책점 4.05였다. 꾸준히 마이너리그에서 선발 등판하며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지난해 항저우아시안게임 예선 첫 맞대결에선 한국 타선을 상대로 6이닝 무실점 쾌투를 펼치며 대만의 4대0 승리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결승전에 다시 등판해 2실점 했으나, 5이닝을 버텼다. 이번 대회에서 대만의 실질적 에이스로 여겨졌다.
베테랑 불펜 요원 천관위(라쿠텐 몽키스)는 대만 야후스포츠를 통해 "(린위민 선발은) 최선의 선택이다. 준비를 잘 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쩡 감독도 현지 매체를 통해 "린위민이 처음 합류했을 때부터 최고의 투수로 여겼고, 한국전 선발로 낙점했다"고 밝혔다.
이럼에도 쩡 감독이 끝내 선발 투수를 숨긴 이유는 뭘까.
대회 규정상 선발 투수 예고는 직전 경기가 끝난 이후 발표해야 한다. 하지만 첫 경기 선발 예고에 대한 규정은 별도로 없다. 단순하게 보면 쩡 감독이 WBSC의 요구가 없는 한, 굳이 선발을 예고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전략적 판단도 생각해 볼 만. 류중일호와 마찬가지로 대만 역시 1차 목표를 도쿄행으로 잡고 있다. 조 2위까지 결선 라운드 티켓이 주어지는 B조에서 일본이 유력한 1위로 꼽히는 가운데, 한국과 대만이 2위 자리를 다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전에 대한 대만 현지의 관심이 폭발적인 가운데, 쩡 감독도 필승을 다짐 중이다. 최대한 궁금증을 키워 혼란을 주기 위한 의도도 없지 않았다고 볼 만하다.
한국 타자들은 일찌감치 린위민 등판을 예상하며 꾸준히 분석해왔다.
홍창기(LG 트윈스)는 "투심과 변화구가 좋다고 들었다. 계속 영상을 보고 있었다. 잘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김도영(KIA 타이거즈)도 "형들이 굉장히 까다로운 공을 던진다고 하더라"며 "신중하게 더 신경 써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끝까지 숨겼다가 발표한 대만 선발 투수는 과연 쩡 감독의 의도대로 류중일호에 혼란을 줄 수 있을까. 그 결과가 곧 드러난다.
타이베이(대만)=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