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용 기자] "야구장에서, 야구를 진심으로 대했던 선수로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통산 타율 2할4푼7리의 수비 전문 선수. 주전으로 뛴 시즌도 많지 않은 유틸리티 플레이어. 이런 커리어를 가진 선수의 은퇴 소식에 야구계까 떠들썩 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를 좋아했고, 이별해야 한다는 사실에 슬퍼했다. 성적보다 더 중요한 가치로 야구계에 영향력을 미쳤다.
KT 위즈 신본기가 은퇴를 결정했다. KT 구단은 12일 신본기의 은퇴 사실을 알렸고, 신본기는 그날 밤 자필 편지를 SNS에 공개하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경남고, 동아대를 졸업하고 2012년 신인드래프트 2차 2라운드 전체 14순위로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은 신본기. 탄탄한 내야 수비력을 바탕으로 꾸준히 1군에서 활약하며 자신의 입지를 다졌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내야 전 포지션 소화가 가능하고, 타격에서도 정확한 컨택트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는 3시즌 연속 100경기 이상 출전하며 사실상 주전 유격수로 활약했다.
신본기는 2021 시즌 트레이드를 통해 정든 부산을 떠나 수원으로 향했다. 부산이 터전이었던 신본기에게 충격적인 트레이드였지만, 신본기는 낯선 수원에서도 4시즌 동안 전천후 내야 유틸리타 자원으로 맹활약했다. 지난 시즌을 앞두고는 생애 첫 FA 자격을 얻어 1+1년 총액 3억원에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프로는 냉정한 곳. 쑥쑥 크는 후배들이 뛸 자리가 필요했고, KT는 신본기에게 재계약 불가 사실을 알렸다. 다른 팀을 알아보겠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도우려고 했지만, 신본기는 KT 선수로서의 은퇴를 택했다.
은퇴 사실이 알려지고 하루가 지난 후 신본기와 연락이 닿았다. 그는 "축하도 받고, 위로도 받고 너무 많은 연락을 받았다. 지금도 답을 다 못 드리고 있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연락이 많이 오니, 생각이 잘 정리가 안 되는 것 같기도 하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제 더 이상 프로 선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첫날 아침, 얼마나 많은 생각과 새로운 감회 속에 하루를 시작했을까.
신본기는 자필 편지에 대해 "정말 최대한 정성스럽게 꾹꾹 눌러 담았다. 펜으로 글을 쓰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더라. 너무 열심히 쓰다보니 손이 아팠다"고 밝혔다.
신본기는 현역 연장을 포기한 것에 대해 "FA 신청 때도 다른 팀들의 연락이 없었다. 작년 2차 드래프트 때도 내가 보호선수 명단에서 풀린 걸 알았었다. 하지만 떠나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지금 시장에 나간다 해도 경쟁력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올시즌 4안타를 친 날이 있었다. 그런데 그 다음 경기 선발로 못 나갔다. 그 전까지는 시합 출전 여부와 관계 없이 다음 경기 준비하자는 생각만 했었는데 그 날 처음으로 그동안 나를 버틸 수 있게 하던 힘이 빠지는 느낌이더라. 재계약 불발 얘기를 듣고 많은 생각을 했다. 은퇴하게 된다면 박수칠 때 떠나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담담하게 은퇴를 결심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신본기는 지난 5월 주전 유격수 김상수의 부상으로 선발로 나가는 경기가 많았다.
그 당시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리고 5월25일 키움 히어로즈전에서 4안타를 쳤다. 그런데 다음 경기인 28일 두산 베어스전에 선발 제외 됐다. 심지어 그날 교체출전으로 1타석에 나와 2루타를 쳤다. 그렇게 감이 좋았으니 많이 아쉬웠을 법 하다.
신본기는 딱 1000경기를 채우고 그라운드를 떠나게 됐다. 그는 "시즌 초중반까지도 1000경기는 전혀 의식하지는 않았다. 출전은 선수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니 인위적으로 기록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팀이 시즌 막판 순위 경쟁이 굉장히 치열한 가운데 1000경기까지 3경기가 남았었다. 감독님께서 먼저 말씀을 해주시고, 배려해주시더라. 덕분에 1000경기를 채우고 은퇴하게 됐다. 감사했다. 개인적으로 큰 의미다. 나도 KBO 역사 한 페이지에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선수가 됐으니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신본기는 롯데에서 9시즌, KT에서 4시즌을 뛰었다. 경남고, 동아대 부산 프랜차이즈다. 롯데 색깔이 조금 더 강했다. 기록도 슈퍼스타급은 아니었다.
하지만 KT는 신본기의 은퇴식을 준비중이다. 그만큼 신본기에 대한 고마움과 애정이 있다는 의미다. 신본기는 "깜짝 놀랐다. 너무 감사하고 고맙다. 은퇴식을 하며 마무리하는 선수가 몇이나 되겠는가. 나는 기록이 좋지도 않고, KT에서 오래 뛴 선수도 아닌데 좋게 봐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며 감격스러워했다.
신본기는 매사 성실하고, 선후배 관계도 좋은 선수다. 지도자를 하면 정말 잘 할 스타일이다. 본인도 욕심이 있다.
하지만 일단 쉬어간다. 가족과 함께 한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였다. 신본기는 "롯데 시절부터 코치, 프런트 어떤 역할이든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준비도 했었다. 그런데 선수 생활을 하며 가족과 시간을 거의 보내지 못했다. 일단 가족과 함께 하려 한다. 그렇게 다음 인생을 준비할 계획이다. 물론 야구는 내 전부다. 받은 게 너무 많으니, 어떻게든 돌려드릴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신본기는 야구 이전 '선행왕'으로 이름을 날렸다.
연봉이 적은 시절부터 꾸준히 기부하고 봉사 활동도 했다. '사랑의 골든글러브' 수상자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 하나가 있다. '선행왕'이란 말보다 더 듣고싶었던 건, '정말 야구를 잘하는 선수'였다는 사실이다. 착한 사람이기 이전에 야구로 성공하고 싶었던 열정의 프로 선수.
신본기는 "야구장에서 진심으로 야구를 대했고, 열심히 했던 선수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팬들이 내 이름 석자만 잊지 않는다 해도 너무 자랑스러운 일이 될 것 같다. 길에서 내 얼굴을 알아봐주시는 것만도 행복했다. 앞으로 야구장에서 또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김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