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데이브 로버츠 감독이 LA 다저스 지휘봉을 잡은 것은 2015년 11월이다. 전임 돈 매팅리 감독이 그해 NL 서부지구 1위를 차지하고도 포스트시즌 첫 관문인 디비전시리즈에서 뉴욕 메츠에 무릎을 꿇어 그 책임을 지고 계약기간 1년을 남기고 사실상 경질된 직후였다.
로버츠 감독은 처음에 3년 계약을 했고, 2019년 구단 옵션 실행과 함께 2022년까지 계약을 3년 연장했다. 그리고 해당 계약이 끝나기 1년 전인 2022년 3월 다시 3년 연장계약을 해 2025년까지 신분을 보장받았다. 첫 계약과 두 차례 연장계약을 통해 2016년부터 내년까지 최소 10년간 다저스 지휘봉을 잡는 셈이 된다.
역대 다저스 사령탑 가운데 10년 이상 장기 집권한 건 윌버트 로빈슨(1914~1931년), 월터 앨스턴(1954~1976년), 토미 라소다(1976~1996년)에 이어 로버츠 감독이 4번째다.
로버츠 감독이 롱런할 수 있었던 것은 매팅리 감독 시절의 전력을 대부분 계승한데다 구단주 그룹인 구겐하임 베이스볼 매니지먼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서부지구 우승을 거의 놓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2021년 106승을 거두고 지구 2위에 그치긴 했어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107승으로 당대 최강이었다는 점에서 로버츠 감독의 흠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로버츠 감독에게 그동안 '박한' 평가가 나왔던 것은 포스트시즌에서 실망스러운 결과를 낸 해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단축시즌이던 2020년 월드시리즈 우승 성과가 빛나긴 하지만, 다저스 구단은 여전히 1988년을 마지막 월드시리즈 우승 해로 여기고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 시즌, 프로야구는 돈이 되는 일이 사실상 아니었다.
특히 로버츠 감독은 2022년 지구 1위로 포스트시즌에 올라 디비전시리즈(DS)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1승3패로 패한데 이어 2023년에도 DS에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상대로 형편없는 경기력으로 탈락하자 경질의 여론이 드높았다. 하지만 다저스 구단은 2022년 3월 3년 연장계약을 한 감독을 계약기간 두 시즌을 남기고 해고하기는 어려웠다. 명분이 약했다.
결국 올해 또다시 가을야구에서 광탈했다면 로버츠 감독의 자리는 굉장히 위태로웠을 것이다. 최소한의 성과는 월드시리즈 진출이었는데, 우승까지 거머쥐었으니 그는 향후 적어도 3년, 아니 5년 동안은 '탄탄대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로버츠 감독을 살린 것은 결국 선수들이다. 부상자 속출로 선발 로테이션이 붕괴된 가운데서도 마운드를 지탱한 불펜진의 공헌이 작지 않았고, 주전급을 떠받친 야수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뭐니뭐니해도 최대 공적자는 오타니 쇼헤이다. 오타니의 정규시즌 활약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타율 0.310, 54홈런, 130타점, 134득점, 59도루, OPS 1.036을 마크한 오타니는 이적 첫 시즌 NL 정규시즌 MVP를 예약했다. DS와 NLCS에서도 3홈런 10타점 12득점을 마크하며 타선을 이끌었다. 다만 월드시리즈는 오타니가 주연은 물론 조연도 아니었다.
다저스타디움 2차전서 7회말 2루 도루를 하다 왼쪽 어깨를 다치면서 공수 능력을 사실상 잃었다. '불완전 탈구(subluxation) 진단을 받아 그냥 벤치를 지켰어야 했지만, 자의반타의반 출전을 강행했다. 경기력이 제대로 나올 리 없었다. 오타니가 월드시리즈 6경기에서 19타수 2안타, 3차전부터는 11타수 1안타로 침묵했음이 이상한 게 아니었다. 홈런과 타점은 한 개도 없었다.
그는 볼넷으로 출루한 뒤 왼손으로 저지 상의 깃을 붙잡고 뛰며 어깨 움직임을 최소화하려고 했다. 그래도 라인업을 지킨 건 왜일까. 바로 존재감이다.
로버츠 감독은 월드시리즈 우승 후 "오타니가 우리 팀과 전세계 팬들에게 선사한 활약은 양으로 측정하기 어렵다"며 "그는 포스트시즌 동안 한쪽 팔만 가지고 뛰었다(He was playing with one arm in the postseason). 보통의 선수라면 포기했을텐데, 오타니는 출전하려고 했고 라인업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덕분에 그는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오랫동안 간직한 꿈을 이뤘다"고 말했다.
특히 로버츠 감독은 "오타니가 라인업에 있는 것만으로도 묵직한 존재감이 있기 때문에 팀에 도움이 됐다"면서 "프레디의 맹활약이 오타니에게 도움이 됐고, 오타니가 라인업에 합류하도록 명분을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오타니는 한 팔만 가지고 출전함으로써 동료들로부터 더욱 많은 존경을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존재만으로도 상대를 긴장시키고, 라인업에 힘을 실어주니 한쪽 팔을 못 쓴다고 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로버츠 감독을 살린 건 오타니였고, 동료들의 힘을 북돋운 것 역시 오타니였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