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용 기자] 이게 일반인들은 느낄 수 없는, 중압감과 긴장감인가.
삼성 라이온즈의 가을야구가 막을 내렸다. KIA 타이거즈에 1승4패로 패했다. 준우승. 그래도 힘들게 플레이오프를 거쳤고, 부상병이 속출하는 가운데 끝까지 열심히 싸웠다.
소득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대체 외국인 선수 디아즈의 방망이가 불을 뿜었고, 은퇴 위기에 몰렸던 베테랑 김헌곤이 가을의 스타로 떠올랐다. '보물' 김영웅도 큰 경기에서 주눅들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투수 파트 최고의 '히트상품'은 김윤수였다. 특히 LG 트윈스와의 플레이오프가 압권이었다. 가장 중요한 승부처, LG에서 제일 센 타자 오스틴이 나올 때마다 150km가 넘는 불같은 강속구로 그를 제압했다. 3번 만나 다 이겼으니, 오스틴이 '멘붕'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한국시리즈에서도 김윤수의 활약이 기대됐다. 위기의 순간, 구위로 찍어 눌러야 할 순간에 김윤수가 등장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달랐다. 1차전 김도영을 상대로 안타를 허용했다. 2차전과 4차전은 무실점으로 잘 버텼다. 포스트시즌 6경기 연속 무실점이었다. 하지만 악몽은 마지막 5차전이었다.
최형우의 솔로포로 3-5 추격을 당한 5회말. 김태훈이 흔들렸다. 1사 1, 2루 위기서 김윤수가 등장했다. 박찬호를 내야 땅볼로 유도해 2사 1, 3루. 하지만 이번 한국시리즈 맹타를 휘두른 김선빈이 부담스러웠는지 볼넷을 내주고 말았다.
만루. 또 김도영이었다. 올해 김도영을 무서워하지 않은 투수는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1패하면 끝인 한국시리즈. 단타면 동점, 장타면 역전이라는 생각이 김윤수의 머릿속을 지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씩씩했다. 주무기인 직구 대신 슬라이더와 커브로 카운트 싸움을 벌이는 영리한 모습도 보였다. 떨리는 순간 나름 제구가 잘 됐고, 변화구 각도 괜찮았다. 그리고 7, 8구째 던진 2개의 153km 회심의 직구. 이게 커트, 볼로 되며 풀카운트에 몰리자 김윤수가 피치에 몰렸다. 표정은 긴장하지 않았다는 듯 괜찮다고 웃었지만, 실제로는 얼마나 떨렸을까. 결국 마지막 슬라이더를 패대기 치고 말았다. 이게 폭투가 되며 주자 2명이 모두 들어왔다. 사실상 KIA로 승기가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누구도 김윤수에게 돌을 던질 수 없었다. 아무리 경험많고 뛰어난 투수라도 압박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김윤수는 올시즌 도중 군 복무를 마치고 삼성에 돌아왔다. 2군에서의 퍼포먼스가 너무 좋아, 큰 기대 속에 합류했는데 그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고질인 제구 불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2군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이번 가을을 위해 절치부심 준비했다. 포스트시즌 준비 과정에서 압도적인 구위를 보여줬고, 박진만 감독이 매료됐다. 당초 구상에 큰 존재가 아니었는데, 플레이오프부터 '신스틸러'로 시리즈 흐름을 바꿔버리는 선수가 됐다.
150km가 넘는 직구는 설명이 필요없고, 커브의 각과 제구도 좋다. 선발로도 성장할 수 있는 선수지만, 이번 가을 필승조나 멀리 마무리로도 클 수 있는 가능성을 확실하게 선보였다.
물론 코칭스태프나 외부에서 약점으로 언급하는, 제구 문제를 더 잡아야 완벽한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 이는 본인이 스스로 이겨내야 할 문제다. 중요한 건, 포스트시즌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실히 어필했다는 것이다. 5차전 마지막 1구가 야구 인생 평생 아픔으로 남을 수도 있겠지만, 더 큰 선수가 될 수 있는 자양분이 될 수도 있다.
김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