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용 기자] 삼성, 무너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대단했다.
28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한국시리즈 5차전. 7대5 KIA의 승리. 시리즈 전적 4승1패로 KIA가 7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다시 들어올렸다. 무려 37년 만에 광주 홈팬들 앞에서 우승을 확정짓는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는 법. 삼성 선수단은 환호하는 KIA 선수들을 보며 분하고 억울한 마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박수를 받을만 했다. 잘싸웠다.
1차전부터 엄청난 악재를 맞이했다. 1-0으로 앞서는 6회 무사 1, 2루 찬스. 경기를 완전히 넘겨버릴 수 있는 흐름에서 비로 경기가 중단됐다. 야구는 흐름의 스포츠라는데 삼성에 치명타였다. 이틀 후 서스펜디드로 경기가 진행됐고, 삼성은 통한의 역전패를 당했다. 역사가 말할 것이다. 그날 삼성이 1차전을 잡았다면 시리즈가 어떤 방향으로 흘렀을지 모른다고.
이 억울한 패배만으로도 선수단 사기는 크게 꺾일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아래서 올라온 체력 부담에 구자욱, 코너의 부상 이탈로 '차-포'를 떼고 강팀 KIA와 맞서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3차전을 잡았다. 하지만 4차전 믿었던 에이스 원태인이 어깨 부상으로 조기 강판되며 암운이 드리워졌다. 완패. 에이스가 이탈했다는 자체가 선수단에 심리적으로 큰 타격을 줬다.
수십년 야구를 한 코칭스태프, 선수들은 안다. 그렇게 패하면, 도저히 역전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1승3패로 몰렸는데, 나머지 3경기를 원정지에서 치러야 했다. 심지어 5차전은 불펜데이였다. 투수 싸움에서 현저히 밀린다는 걸 아는 상황에서 3연승은 불가능이라고 여길만 했다. 그러면 선수단이 자기도 모르게 움츠러들고, 포기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삼성은 그렇지 않았다. 경기 초반부터 포기하지 않고 디아즈와 김영웅의 홈런포로 기선을 제압했다. 초반부터 KIA가 앞서나갈 것이라는 전망을 무색케 하며, 축제 준비에 들뜬 KIA를 긴장시켰다. 투수 부족으로 경기 중반 동점, 역전을 허용했지만 8회 만루 찬스를 만드는 등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웠다.
삼성이 5차전 맥없이 무너졌다면, 물론 KIA 선수단과 팬들은 기뻤겠지만 승리의 전율은 덜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삼성이 마지막까지 '쫄깃'한 싸움을 만들어줬기에 KIA의 마지막 우승 순간도 더 값질 수 있었다.
박진만 감독도 마찬가지다. 올시즌 중반 자신이 영입한 수석, 투수코치를 잃는 아픔을 겪었다. 잘싸우고 있는데, 잠시의 부진이라고 '팔다리'를 잘리는 결정을 당하면 감독으로서 크게 휘청거릴 수 밖에 없다. 엄청난 일이었다. 하지만 새롭게 합류한 정대현 수석코치와 함께, 흔들리지 않고 팀을 이끌었고 시즌 전 '약체'라는 평가를 비웃듯 팀을 정규시즌 2위에 올려놨다.
한국시리즈 승부처에서 아쉬운 선택이 나오기도 했지만, 부상 선수가 속출한 상황에서 팀을 한국시리즈까지 진출시켰고 '졌잘싸'라는 평가를 받았다. 우승이라는 결실을 맺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박수를 받을만한 시즌을 보낸 건 확실하다. 김영웅이라는 신예 거포가 탄생했고, 김지찬을 중견수로 전환시킨 것도 '대성공'이었다. 은퇴 위기에 몰렸던 김헌곤을 살려낸 것도 박 감독의 뚝심이 있어 가능했던 결과였다.
김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