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KIA 타이거즈 최형우(41), 털털하면서도 묵직하다.
팀내 최고참으로 격의없이 후배들과 어울리길 즐기지만, 경기장 안에선 누구보다 무게감 있는 선수다. 불혹을 넘긴 나이에 치른 올 시즌에도 116경기에서 22홈런 109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860을 기록할 정도로 실력도 뛰어나다. 경기장 안에서 만큼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갖고 있다.
이런 최형우도 고개를 숙이는 인물이 두 살 터울의 이범호 감독(43)이다.
최형우는 2017시즌을 앞두고 FA로 KIA와 계약하면서 이 감독의 선수 말년과 함께 했다. 당시엔 이 감독이 팀내 고참으로 선수들을 이끄는 역할을 했다. 이 감독은 최형우 이적 첫 해 한국시리즈에서 만루포를 쏘아 올리며 V11에 지대한 공을 세우기도. 호탕한 성격으로 후배들을 아우르면서도 뚜렷한 소신과 야구관으로 '지도자감'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2019년을 끝으로 현역 은퇴한 이 감독은 해외 연수를 거쳐 2021년부터 KIA로 돌아와 최형우와 지도자-선수로 다시 만났다.
나이차는 불과 두 살. '형'이라 부르던 이 감독을 '코치님', '감독님'으로 부르는 게 낯설 수밖에 없었던 최형우다. 하지만 최형우는 누구보다 이 감독을 잘 따르며 후배들의 본보기가 됐고, 이 감독도 이런 최형우에 적잖이 의지했다. 8월 초 옆구리 부상을 한 최형우는 이 감독의 만류에도 1군 동행을 자처하면서 예상보다 빨리 복귀했고, 페넌트레이스 막판 조기 우승에 힘을 보태기도.
이번 한국시리즈에서도 최형우는 꾸준한 활약상을 펼쳤다. 특히 에이스 양현종을 내고도 경기 초반 1-5로 끌려가던 5차전에서 최형우는 적시타, 솔로포 등 추격점을 '하드캐리'하면서 역전승의 발판을 만들었다. 허리 부상으로 4차전을 건너 뛴 그는 100% 몸상태가 아님에도 출전을 자처했다.
최형우는 "정말 마지막 한국시리즈가 될 수도 있기에 뭔가 해보고 싶었다"며 "사실 다시 허리 상태가 안 좋아졌다. 코치님께 경기 중 '6차전은 못 나갈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역전승을 했다. 야구 인생이 끝나기 전에 한 번 더 우승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감격을 숨기지 않았다. 이어 "외부에선 우리가 우승후보라 했지만 초반부터 순탄하게 오진 못했다. 작년이랑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 왜 우승후보로 꼽히는 지도 어리둥절했다"며 "동생들이 노력해 키운 기량으로 팀이 선두에 올라섰고, 1년간 고생해 결국 우승이란 결실까지 맺었다. 동생들이 너무 대견하고 멋있다. 이전까진 알을 깨지 못하는 느낌도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에 내놓아도 만족할 만한 선수들이 됐다"고 후배들을 칭찬했다.
벅찬 감정으로 우승 소회를 밝히던 최형우, 그 과정에서 동행한 이 감독은 과연 이였을까.
최형우는 "나중에 내가 지도자가 된다면 그대로 하고 싶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그는 "예전에 후배들에게 '(이)범호형 같은 선배가 되고 싶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며 "감독님은 그때와 변함없이 우리를 위해 항상 옆에서 챙겨주는 형님 같은 분"이라고 고마움을 드러냈다.
최형우는 "어쩌면 내 야구 인생의 마지막 우승이 될 수도 있다"며 감회에 찬 표정을 지었다. 불혹을 넘긴 뒤에도 아끼지 않은 헌신의 배경엔 누구보다 믿고 따르는 선배 지도자가 있었다.
광주=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