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 투수 무너졌을 때 가장 힘들었다…메워준 선수들에게 고마워"
"마음속 MVP는 김도영…팀 자체가 변했다"
(광주=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이범호 KIA 타이거즈 감독은 29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24 프로야구 한국시리즈(KS) 5차전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7-5로 꺾고 우승한 뒤 샴페인 냄새가 짙게 풍기는 우승 티셔츠를 입고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왔다.
상기된 얼굴로 자리에 앉은 이범호 감독은 마이크로 인사말을 전하다가 다시 마이크를 내려놓곤 "그냥 큰 목소리로 인터뷰하겠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취임 첫해 KS 우승을 차지한 이범호 감독은 사령탑으로서 품위를 지키려는 듯 곧은 자세로 취재진과 눈을 맞추며 우승 소감을 밝혔다.
이 감독은 지난 1년간 KIA가 걸어온 길을 소개하면서 앞으로 걸어갈 길도 설명했다.
초보 감독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음은 이범호 감독과 일문일답.
-- 우승한 소감은?
▲ 팀을 맡은 뒤 힘든 시기도, 좋은 시기도 있었다. 항상 응원해주신 팬들께 감사드린다.
-- 처음 감독이 됐을 때 팀 상황이 좋지 않았는데, 우승에 관한 기대감이 있었나.
▲ 2년 안에 우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승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선수들도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KIA엔 좋은 젊은 선수가 많고 능력 좋은 베테랑 선수도 많다. 더 발전하는 팀으로 만들겠다.
-- 선수 때 우승한 느낌과 감독으로서 우승한 느낌은 무엇이 다른가.
▲ 선수, 감독을 떠나 홈에서 우승하니까 매우 좋다. 그동안 광주 팬들께 우승의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했다. 꼭 이곳에서 우승하고 싶었다. 목표 달성하게 돼 감사하다.
-- 경기 초반 5점을 내주는 등 위기가 있었는데.
▲ 막으면 승산 있다고 봤다. 삼성은 등판할 투수가 많이 없기 때문에 지금부터 잘 막으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김도현을 투입한 뒤 필승조를 붙이면 따라갈 수 있다고 봤다. 다만 득점 기회가 2사 이후에 많이 나왔다. 선수들이 긴장해서 어려운 상황이 됐다. 그래도 극적으로 우승하게 돼 매우 감사하다.
-- 정규시즌을 돌아봤을 때 가장 큰 위기는 어느 순간이었나.
▲ 선발투수들이 빠졌을 때 힘들었다. 야수는 대체할 수 있지만 선발 투수는 어렵다. 불펜진도 부하가 걸리더라. 이의리, 윤영철, 제임스 네일이 빠질 때마다 고민했는데 김도현, 황동하 등이 잘 메워줬다.
-- 마음속의 최우수선수(MVP)는.
▲ 김도영의 빠른 성장으로 팀 자체가 변했다. 김도영이 안 나왔다면 젊은 선수들이 쉽게 변화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김도영이 내야의 한 자리를 맡아주면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김도영처럼 많은 젊은 선수들이 성장했으면 좋겠다.
-- 젊은 투수 중 곽도규도 잘했는데.
▲ 윤영철, 김도영, 정해영 등 성장하는 젊은 선수들이 많다. 앞으로 무서운 팀이 될 것이다. 곽도규도 성장 가능성이 보여서 개막전 어려운 상황에 투입했다. 대담하게 던지더라. 곽도규가 필승조에 합류하면 충분히 우승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불펜이 잘 만들어지면서 선발투수들이 부상으로 이탈해도 잘 버틸 수 있었다.
-- 앞으로 어떤 선수의 성장을 기대하나.
▲ 윤영철은 내년 선발 한 자리를 지켜줄 것이라 기대한다. (부상 이탈한) 이의리가 돌아오면 더 강해질 것이다. 신인 선수, 2군 선수들도 성장하길 기대한다.
-- 포수 김태군이 1표 차이로 KS MVP를 놓쳤는데.
▲ 아까 시상식 후 내 옆구리를 찌르면서 팀 MVP는 없냐고 하더라. (웃음) 볼 배합을 잘해줬다. 김태군, 김선빈 둘 다 매우 잘했다. 다 MVP를 받을 자격이 있다. 김태군은 잘 위로하겠다.
-- 처음 KIA와 선수 계약할 때를 돌아보면.
▲ 한화 이글스에서 선수 생활을 할 때 광주에 올 때마다 좋은 성적을 거뒀다. KIA에서 날 영입할 것 같았다. 광주 팬들은 이름이 호랑이인데 왜 광주에 안 오냐고 했다. 내가 잘하면 KIA가 이름 때문이라도 날 불러주겠다고 생각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뛸 때 외로웠는데, 구단에서 날 찾아와주셨다. 그때 생각이 아직도 생생하다. 감사드린다. 선수 생활을 거쳐 감독까지 맡아서 우승하게 됐다. 앞으로 KIA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 감독 부임 첫해에 우승했는데 다음 목표는.
▲ KIA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이 팀을 좋은 팀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수들의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내 임무다. 우승을 많이 하도록 노력하겠다.
-- 우승 후 박찬호가 많이 울더라.
▲ 박찬호의 플레이를 싫어하는 팬들도 있더라. 조금 건들거리는 모습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박찬호처럼 매일매일 열심히 뛰는 선수는 드물다. 박찬호가 원하는 야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더 멋진 선수가 되도록 이끌겠다.
-- 부임 초기를 떠올리면.
▲ 스프링캠프가 열린 호주에서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것 하라'고 했다. 이 약속을 올 시즌 내내 지켰다. 감독의 눈치를 보는 선수가 없어지도록 노력하겠다. 사실 많은 선수는 자기 기량을 못 펼치고 운동을 그만둔다. 기량을 펼치는 선수가 많도록 팀을 이끌겠다.
-- 왕조를 만들기는 쉽지 않은데.
▲ 선수들이 자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년에 다시 우승하고 싶다. 우승의 기쁨은 올해에 끝난다. 왕조를 만드는 건 어렵다. 구단 전력은 다 비슷비슷하다. 차근차근 올라가는 팀을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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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