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감독님께서 좋은 기회를 주셨는데…아쉽죠."
1951일만에 1군 무대에 선발등판했다. 1m97의 거인에겐 모처럼 맛본 전진, 뜻깊은 한걸음이었다.
경남 김해 2군 훈련장에서 만난 롯데 자이언츠 윤성빈(25). 그의 투구폼은 김태형 감독의 대면식이 열리던 작년 이맘때와 달랐다.
벌써 수차례 투구폼 변경을 거친 그다. 자신을 괴롭히던 각종 부상 극복과 제구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지난해에는 '어깨 통증 없이, 보다 편안한 투구폼'을 찾고자 팔 높이를 내려 쓰리쿼터로 던졌다. 하지만 이번엔 허리부상이 그를 괴롭혔다. 다시 새로운 팔 각도를 찾았고, 올여름 퓨처스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 7월 30일 인천 SSG랜더스전에 선발등판했다. 1군 등판 기준으론 2021년 5월 21일 잠실 두산전 이후 1166일, 선발등판은 2019년 3월 28일 부산 삼성 라이온즈전 이후 1951일만에 처음 맛본 감격이었다. 윤성빈의 1군 등판 소식을 접한 팬들이 플래카드와 현수막으로 그를 응원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1회 2사 후 빗맞은 안타가 화근이 돼 2실점했다. 추신수를 삼진 처리하며 한숨을 돌렸지만, 2회 들어 스트레이트 볼넷, 동점 투런포, 다시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준 뒤 교체됐다. 기록은 1이닝 5실점.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 1군 등판이었다. 윤성빈은 "감독님께서 좋은 기회를 주셨는데, 내가 놓쳤다"며 속상해했다.
2017년 1차지명으로 롯데 유니폼을 입은 이래 꾸준히 주목받아온 유망주다. 압도적인 키에 걸맞지 않게 탄탄한 체격에서 뿜어져나오는 150㎞대의 강속구는 말그대로 '특급재능'이다.
야구도, 윤성빈도 아직 서로를 포기하지 않았다. 윤성빈은 최근 울산-KBO Fall 리그(교육리그)에서 승리투수가 됐다. 지난 16일 고양 히어로즈를 상대로 3-3으로 맞선 7회말 윤성빈이 1이닝 무실점으로 잘 막고, 장두성의 희생플라이로 팀이 승리한 덕분이다.
윤성빈은 바뀐 투구폼에 대해 "최대한 편안하게, 또 일관성 있게 던지기 위해서 바꿨다. 라인에 맞춰서 던지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올해초 겪은 허리 부상 때문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뒤늦게 6년만의 선발 등판 이후 속내도 전해들었다. 윤성빈은 "물론 만족스럽진 않지만, 그래도 몇년만에 1군 시합을 나갔다. 좋진 않았지만, 어찌 됐든 결과를 내고 기록을 남겼다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내년이면 프로 9년차 시즌을 맞이하는 그다.
"작년 재작년까지는 초조함, 답답함이 심했다. 올해는 생각이 바뀌었다. 잘 던진다 못 던진다를 따질 입장도 아닌 것 같고… 부상이 있었지만, 금방 회복해서 2군에서나마 한시즌을 꾸준히 던진 자체로 1보 전진이라고 생각한다. 매경기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던진다. 야구 말고 다른 문제는 지금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1군 선발 통보를 받았을 때의 설렘은 컸다. 윤성빈은 "이 기회 잡아야한다, 보여주자 생각했다. 내가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 이하)를 말할 입장은 아니고,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생각을 했다"면서 "1회에 바짝 긴장했는데, 실점도 있었지만 또 득점 지원도 있었으니까…2회에 갑자기 긴장이 확 풀리면서 무너진 것 같아 아쉽다"고 돌아봤다.
짧게나마 1군 마운드에 올랐고, 스트라이크를 던졌다는 자체로 한걸음 내딛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 새로운 시즌을 기약한다.
"1군에서 오래 버티고 싶다. 시합에 많이 나가고 싶다. 공을 많이 던지고 싶다. 올겨울 잘 먹고, 무겁게 들고, 많이 뛰겠다. 내가 할일은 그것 뿐인 것 같다"
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