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대망의 한국시리즈 1차전. 데뷔 후 처음 밟아보는 설레는 최고 무대. 선발 등판한 원태인은 무척 아쉬웠다.
비로 서스펜디드 결정이 나면서 불가피해진 강제 강판. 원태인은 이날 쾌조의 피칭 중이었다.
5회까지 2안타 4사구 2개, 3탈삼진 무실점. 5이닝을 단 66구로 마쳤다. 경기가 이어졌다면 최소 6회, 길게는 7회까지 소화할 수 있는 페이스였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에이스의 조기 퇴장. 빗 속에 무리한 경기 강행에 삼성 측이 반발한 이유 중 하나였다.
다음날인 22일 만난 원태인은 진한 아쉬움을 표했다.
"컨디션도 너무 좋았고 피칭도 제 생각대로 잘 되고 있었고 분위기도 좋았는데, 진짜 어떻게 보면 제 야구 인생에서도 정말 기억될 만한 피칭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그런 자신감도 있었던 날이었는데 그렇게 끝나다 보니 아쉬움이 진짜 컸던 것 같아요."
평소 기특한 후배에게 칭찬보다 끊임 없는 긴장감을 주는 베테랑 선배 포수 강민호도 이번 만큼은 큰 경기에서 보여준 에이스 진면목에 엄지를 치켜세웠다.
"(강)민호 형과 세운 전략도 잘 맞아 떨어지고 있었고 투구수 관리도 잘 되고 있던 상황이어서 더 아쉬웠어요. 형도 '진짜 너의 날이 될 수 있었는데 아쉽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냥 밥이나 먹으러 가자' 하셔서 그냥 시원하게 '다음 경기 준비 잘해보자' 하고 넘어갔던 것 같아요."
아쉬웠던 하루. 하지만 전화위복의 여지가 생겼다.
22일 예정됐던 1차전 서스펜디드 잔여경기와 2차전이 우천으로 시리즈가 하루씩 미뤄졌기 때문이다.
21일 1차전에 66구만 던진 원태인이 4일 휴식 후 26일 대구 4차전에 출격할 수 있게 됐다.
박진만 감독은 22일 우천 순연 뒤 "원태인의 어제 투구 수가 70개가 안됐다. (4일 휴식 후) 5일째 되는 날에 충분히 등판 가능하다고 본다"며 원태인의 26일 4차전 선발 등판을 기정사실화 했다. 원태인은 당초 5차전 선발 예정자였다.
다승왕 에이스의 1차전→4차전→7차전 등판 로드맵이 완성된 셈. 본인은 어떤 각오로 남은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을까.
"그럼요, 당연히 던져야 하고 내일 당장 6회부터 던지라고 해도 저는 준비가 돼 있고요. 진짜 그만큼 제가 가을야구에 모든 걸 바치기 위해서 최종전 단독 다승왕 기회도 포기를 했으니 어떤 상황에서든 올라갈 수 있습니다. 오늘 경기를 했으면 3일 쉬고 4차전에 등판을 했어야 하는건데 제가 4일 쉬고 나갈 수 있게 됐어요.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투구수를 절약했기 때문에 4일 쉬고 좋은 컨디션으로 4차전을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7차전에도 만약에 사흘 쉬고 선발 등판하라면 등판할 것이고, 불펜대기를 하라고 하면 또 불펜 대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몸 상태가 좋습니다. 뭐 사실 아픈 데야 많지만 진짜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잖아요. 정말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저뿐만 아니라 저희 선수들 모두 다들 투혼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듬직한 다짐.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나홀로 4승으로 롯데 자이언츠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불명의 거인' 최동원을 연상케 하는 투지다.
당시 롯데는 삼성의 '져주기 게임' 의혹 논란 속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김시진 김일융이 버티고 있던 삼성 우승이 점쳐졌지만 최동원의 투혼 속에 롯데가 4승3패로 극적인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다.
많은 사람들이 'KIA 우승'을 점치고 있는 상황 속에 원태인도 최후의 반전을 꿈꾸고 있다.
"저희는 (시즌 초부터) 모든 평가를 뒤집고 있기 때문에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플레이오프도 2등으로 기다렸는데도 LG 쪽으로 많은 전문가들이 예상을 했었잖아요. 이번에도 KIA 쪽으로 많은 전문가들이 예상을 하는데 플레이오프 때도 비가 내리면 LG에 유리하다고 많이 말씀하셨는데 저희가 다 뒤집었다시피 이번에 내린 비도 저희가 충분히 예상을 뒤집는 결과를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 모든 평가를 뒤집을 준비가 돼 있는 것 같습니다."
광주=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