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참 오래걸렸네요."
국대 스트라이커 오현규(23·헹크)가 10일(한국시각) 요르단 암만 암만국제경기장에서 열린 요르단과의 2026년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 B조 3차전에서 추가골을 넣어 2대0 승리를 이끈 뒤에 남긴 소감이다. 전반 38분 이재성(마인츠)의 헤더 선제골로 팀이 1-0으로 앞선 후반 7분 주민규(울산)와 교체투입된 오현규는 후반 23분 날카로운 오른발 슈팅으로 골망을 갈랐다. 주장 손흥민(토트넘)이 햄스트링 부상으로 낙마하고, 전반 중반 황희찬(울버햄턴)이 부상으로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전매특허인 저돌성과 과감한 슈팅으로 승리에 일조했다.
A매치에 데뷔한 뒤 마수걸이 골이 터지기까지 오현규의 말대로 참 오랜시간이 필요했다. 오현규는 수원 삼성에서 뛰던 2022년 11월 아이슬란드와의 친선전에서 A대표팀에 데뷔해 셀틱(2023~2024년)에서 몸담은 시절엔 골맛을 보지 못했다. 2년간 A매치 11경기를 치르면서 골이 나오지 않았다. 지난해 3월 우루과이와의 친선전에선 후반 39분 이강인의 크로스를 오른발 터닝슛으로 득점했으나, 비디오판독시스템(VAR) 결과 오프사이드 판정이 나오면서 득점이 무효처리되며 아쉬움을 삼켰다. 지난 카타르아시안컵 이후 이번 10월 A매치 데이까지 8개월 가까이 대표팀에 재발탁되지 않아 점점 조바심이 났을 법하다.
오현규가 꿋꿋이 요르단전까지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을 심어준 건 다름아닌 주장 손흥민이었다. 손흥민은 지난해 6월 우루과이전에서 선발출전한 뒤 소득없이 후반 17분 교체아웃되어 벤치에서 실망감을 표출하던 오현규를 향해 '현규야, 실망하면 안 돼. 알겠지? 그러면서 배우는거야. 앞으로 더 중요한 경기가 남아있어'라고 독려했다. 손흥민은 카타르월드컵을 끝마치고는 가장 고마운 선수로 오현규를 꼽았다. 자신의 안와 골절 부상 여파로 대기조로 뽑혀 16강까지 4경기를 모두 관중석에서 지켜본 오현규를 향해 '(현규가)나 때문에 희생했다. 어린 선수임에도 이 팀이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알고, 그 역할에 충실했다. 최종명단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내게 있어 이번 월드컵을 같이 한 선수 중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선수였다. 너무나도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오현규는 대선배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셀틱에서 출전 기회가 주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지난 7월 벨기에 헹크로 과감히 둥지를 옮겼다. 이적은 탁월한 결정이었다. 꾸준한 출전 기회로 경기력을 끌어올린 오현규는 지난달 덴데르전에서 벨기에 무대 데뷔골을 넣고, 5일만에 메첼렌을 상대로 멀티골을 쏘며 기세를 한껏 끌어올렸다. 이런 활약을 통해 8개월만에 대표팀에 재승선한 오현규는 교체투입 17분만에 골망을 가르며 홍명보 A대표팀 감독과 축구팬의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오현규가 골을 넣는 과정은 흡사 '전 주전 스트라이커' 황의조(알란야스포르)를 연상케했다. 오현규는 역습 상황에서 배준호의 패스를 받아 골을 넣기 전 과감하게 두 번이나 중거리 슛을 시도했다. 주변 동료들에게 안정적으로 패스를 내주기보단 스트라이커답게 과감하게 골문을 두드렸다. 황의조가 개인 문제로 대표팀 활동이 잠정 중지된 이후 저돌적이고 화끈한 스타일의 스트라이커는 오현규가 처음이었다. 득점 장면을 돌아보면 황의조가 절정의 기량을 뽐낸 시기에 종종 보여주던 모습과 흡사했다. 이번에 발탁된 두 명의 공격수인 주민규와 오세훈(마치다)은 상대 페널티박스 안 움직임에 특화된 유형이었다. '왼쪽 공격수' 손흥민 황희찬 엄지성(스완지시티)에게 기대한 역할을 대신 수행했다.
오현규의 데뷔골 뒤에도 손흥민이 있었다. 오현규는 11일 귀국 인터뷰에서 "(손)흥민이형은 대표팀에 있든 없든 선수들에게 큰 존재다. 단체 채팅방에서 좋은 말을 많이 해줘서 자신감을 갖고 경기에 임할 수 있었다"고 감사를 표했다. 2023년 10월 이후 지난 1년 동안 A매치에서 손흥민과 이강인(파리생제르맹)이 동시에 골을 넣지 못한 경기에서 한국이 승리한 건 지난 1월 이라크전(1대0 승)과 이번 요르단전, 두 경기뿐이다. 두 경기에서 이재성이 모두 결승골을 넣었고, 오현규가 한 골을 보탰다. 15일 이라크 골문을 겨냥하는 오현규는 "너무 기대되고 재밌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