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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도, 예산도 아니다...이정효 감독이 원하는건 그저 '좋은 잔디'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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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선수도, 예산도 아니다. 이정효 광주FC 감독이 바라는건 그저 선수들이 신나게 뛸 수 있는 '좋은 잔디'다.

이 감독은 최근 경기 전후 인터뷰마다 입버릇처럼 잔디 이야기를 꺼낸다. 이쯤되면 부탁이나 요청이 아니라 '절규'에 가깝다. 그만큼 광주축구전용구장의 잔디는 심각하다. 정상적인 플레이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6일 열린 FC서울과의 경기에서는 그라운드 사정 때문에 이승모가 다쳤을 정도다. 훈련장 사정도 마찬가지다. 올 6월 30억원을 들여 완성한 광주FC 전용 연습장은 단 두달만에 엉망이 돼 버렸다. 사실상 맨바닥이나 다름없는 지경이다.

올 시즌 아시아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치러야 하는 광주월드컵경기장 사정도 다르지 않다. 최악의 잔디 상태로 관계자들을 경악케 하더니, 결국 자격을 박탈당했다. 광주는 22일 열리는 조호르 다룰 탁짐(말레이시아)과의 홈경기를 용인미르스타디움에서 치러야 한다. 광주월드컵경기장으로부터 약 268km 떨어진 곳이다. 경기 이틀 전 이동해 합숙해야 하는만큼, 사실상 원정 경기를 치르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 감독은 시즌 내내 '잔디'라는 '적'과 싸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 감독은 2022년 광주의 K리그2 우승을 이끌었고, 지난해에는 K리그1 3위에 오르며 광주 창단 첫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진출이라는 엄청난 기적을 썼다. 비록 올해는 아쉽게 파이널A 진출에 실패했지만, 정교하면서도 공격적인 이정효식 축구는 여전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처음으로 나선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엘리트에서는 J리그 명가, 요코하마 마리노스와 가와사키 프론탈레를 연파하며, 아시아 축구계를 놀라게 했다. 이마저도 재정 건전화 룰 위반으로 여름에 단 한명의 선수도 영입하지 못한채 만든 결과다. 지도자로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발휘하고 있지만, 엉뚱한 곳에 발목이 잡혀버린 형국이다.

사실 이 감독은 잔디 문제만 해결된다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가와사키전 이후 그 확신은 더욱 커졌다. 이 감독은 "가와사키의 좋은 환경에서 연습을 하는데, 평소에 하던 것보다 플레이가 더 잘이루어지더라. 선수들도 '이게 되네요'라고 웃었고, 이같은 자신감은 실제 경기에서도 이어졌다. 좋은 잔디 위에서 뛰니까 우리가 준비한 플레이가 구현이 됐고, 결국 승리로 이어졌다. 나도, 선수들도 '아, 우리 축구가 경쟁력이 있는 축구구나'라는 자부심이 생겼고, '환경만 좋아진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플레이를 만들어 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광주의 잔디 사정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또 다시 그 안에 답을 만들어야 한다. 서울전에서 잔디에 고전하는 상대와 달리, 광주는 나름 짜임새 있는 빌드업을 선보였다. 이 감독은 "그래도 선수들이 준비한걸 하더라"라고 씁슬하게 웃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쥐어짜내는 것만으로는 버틸 수 없다. 좋은 선수를 영입해달라는 것도, 기업구단만큼 예산을 늘려달라는 것도 아니다. 경기의 기본인 잔디를 갖춰달라는 이 감독의 요구는 그렇게 무리한 것이 아니다. 이 감독은 "성적이 좋지 않으면 감독이 책임을 진다.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시고, 그때 감독에게 책임을 물면 된다"고 안타까워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