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스포츠조선 김용 기자] 너무 흥분했던 것일까.
스포츠 세계에서는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면, 자기가 가진 이상의 능력이 나온다고 한다. 야구에서는 투수가 더 빠른 공을 던지고, 골프에서는 평소 비거리보다 더 멀리 샷을 보내기도 한다.
그런데 지나치게 흥분하면 그게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지나치게 흥분하면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게 그 순간 분위기에 휩쓸릴 수 있기 때문이다.
LG 트윈스는 9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KT 위즈와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 연장 11회 접전 끝애 5대6으로 분패했다. 이날 시리즈를 끝내고 플레이오프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날렸다.
땅을 쳐야했다. 11회말 무사 만루 위기에 빠질 때까지만 해도 맥없이 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이번 시리즈를 앞두고 크게 기대감을 주지 못했던 정우영이 마운드에 올라 엄청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배정대를 2루 땅볼로 유도해 홈에서 주자를 잡아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쉽지 않았는데, 정우영이 대타 천성호를 헛스윙 삼진 처리하며 풀죽었던 3루쪽 LG팬들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정우영은 150km가 넘는 강력한 투심의 소유자. 이날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최고 147km를 찍었다. 정우영이 도망가지 않고 적극적인 투구를 하니 오히려 KT 타자들이 당황한 듯 보였다.
2사 상황 들어온 타자는 심우준. 정우영의 초구 투심이 스트라이크에 꽂혔다. LG팬들의 환호성이 절정에 달했다. 다시 한 번 투심 승부. 파울. 2S까지 몰리자 경기장 분위기는 최고조로 달아올랐다. 그런데 여기서 흥분을 가라앉혀야 했다. 천성호 때처럼 2S 상황서 바깥쪽 공을 하나 보여주고 스윙을 유도하는 승부로 갔으면 좋았을 상황. 하지만 정우영은 자신감이 넘쳤는지, 아니면 힘이 떨어져 제구가 되지 않았는지 3구째도 투심으로 정면 승부를 했다.
심우준이 이를 놓치지 않았다. 하필 이날 경기 중 가장 느린 143km 투심이 들어왔고, 심우준이 정타를 맞혀 끝내기 안타가 됐다. 중앙에서 약간 바깥쪽 공이었는데, 심우준이 8회 에르난데스를 상대로도 바깥쪽 슬라이더를 받아쳐 똑같은 코스 중전안타를 만들었던 점을 생각하면 코스도 아쉬웠다.
정우영의 선택인지, 포수 허도환의 볼배합인지 정확한 건 알 수 없지만 어찌됐든 유인구 하나가 생각날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정우영이 박영현처럼 150km 힘있는 강속구를 뿌렸다면 몰라도, 이날의 구위였으면 그렇게 자신있는 승부를 벌일 타이밍은 분명 아니었다.
수원=김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