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스포츠조선 안소윤 기자] 류성희 미술감독이 봉준호 감독과 영화 '살인의 추억'을 작업하면서 느낀 점을 털어놨다.
류성희 미술감독은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상산업센터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봉준호 감독이 '살인의 추억'을 연출할 때 이미 전생부터 준비해 온 것처럼 모든 준비가 완벽했다"라고 했다.
류 미술감독은 지난 2002년 류승완 감독이 연출한 '피도 눈물도 없이'로 상업 영화 데뷔식을 치렀다. 이후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괴물', '박쥐', '고지전', '국제시장', '암살', '헤어질 결심' 등 다수의 작품에 참여하며 한국의 대표적인 미술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류 미술감독은 "제가 운이 좋았다. 류승완, 봉준호, 박찬호 감독님이 아니었으면 더 빨리 영화 산업에서 튕겨져 나갔을 것"이라며 "제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 여성 미술감독님 한 분 계셨고, 대다수가 남자 미술감독님이었다. 한국에 아는 사람 없어서 직접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유명한 영화사를 다 찾아다녔다. 당시 제작사에서 멜로나 로맨스 작품이 제작된다면 저한테 한 번은 연락을 주겠다고 하더라. 그만큼 창조적인 장르 영화는 '남성의 영역'이라는 확고한 인식이 있었고, 이러한 선입견을 깨부수고 싶었다. 그 이후에 류승완, 봉준호, 박찬욱 등 새로운 감독님들이 오시면서 저에게 기회를 열어주셨고,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어주셨다"고 말했다.
류 미술감독은 세 감독과 작업하면서 느낀 차별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먼저 류승완 감독에 대해 "제가 두 여 주인공이 등장하는 액션 영화로 매년 기다리던 첫 번째 장르 영화를 하게 됐다"며 "류 감독님은 워낙 영화광이셔서, 작품을 만들 때도 에너지가 넘쳐 계신다. 저도 그분처럼 어떻게 하면 영화에 대한 에너지를 잃지 안고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봉준호 감독과의 작업을 떠올리며 "장르를 통합하는 부분에 대해 배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봉 감독님과 나이가 1살 차이인데, 감독님은 '살인의 추억'을 이미 전생부터 준비해 온 것처럼 모든 준비가 완벽하셨다. 그 당시 일어났던 일이지만, 한국의 로컬 사회를 그분에게 배웠다. 로컬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가장 가깝지만 지구 끝 먼나라보다 낯선 느낌을 구현하는 과정을 배우고 공유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올드보이', '아가씨', '헤어질 결심' 등을 함께한 박찬욱 감독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류 미술감독은 "저처럼 어릴 때부터 가져온 아름다움이란 무엇이고 추함이란 무엇인지, 또 그곳에서 춤추는 사람들이 무엇인가에 대해 뚜렷한 정의를 내리려고 하시지 않더라"며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오히려 관객들에게 모호하게 질문을 던지시는 그의 세계관이 저와 너무 잘 맞았다. 그 과정을 함께 하면서 여전히 즐기고 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한편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와 샤넬은 올해 새롭게 제정한 까멜리아상 첫 수상자로 류성희 미술감독을 선정했다. 까멜리아상은 다양한 영화 작업들 속에서 여성의 지위를 드높인 저명한 영화 제작자 및 업계 종사자 등에게 수여된다. 부산의 시화이자 가브리엘 샤넬 여사가 가장 좋아했던 꽃인 동백꽃의 의미를 담아 까멜리아상으로 제정했다.
안소윤 기자 antahn22@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