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용 기자] "여러 생각이 든다."
두산 베어스 이승엽 감독이 KT 위즈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 2차전을 패한후 뱉은 말이다. 이 감독은 "2패를 해 시즌이 마감됐다. 마음이 아프다. 4위로 마쳤는데 (결과가 이렇게 나오니) 억울하다"고 했다. 일부 보도에서는 이 감독이 자신에게 "나가"라고 하는 소리에 억울함을 표시했다고도 했는데, 이는 지나친 억측. 이 감독이 인터뷰를 할 때는 팬들이 목소리를 내기 전이었다. 이 감독은 4위로 올라가 유리한 고지를 점했는데 패해 억울하다고 했다. 선수 시절부터 크게 실패한 경험이 없는 레전드기에, 이런 패배가 너무 뼈아플 듯.
이 감독은 작심한 듯 얘기를 꺼냈다. 그는 "2경기 무득점이다. 점수를 내지 못했다. 야구는 홈플레이트를 누가 많이 밟느냐의 승부인데 말이다.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패했다"고 밝혔다. 이어 "잘 치고, 잘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단기전에서는 얼마만큼 뒤에 있는 타자들에게 연결해주고, 찬스가 왔을 때 응집력을 발휘하느냐가 중요하다. 우리는 찬스에서 삼진이 많았다. 디테일한 야구가 되지 않았다. 여러 문제가 많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어지는 중요한 코멘트. 이 감독은 "올시즌 팬들이 많았다. 정규시즌은 장타력으로 재미를 봤다. 그런데 단기전은 장타가 터지지 않으니 힘들었다. 내년을 위해서는 공격적인 야구도 중요하지만, 디테일한 상황에 맞는 야구를 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고 했다.
무슨 의미일까.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중심 타선의 부진을 꼬집은 것으로 보인다. 두산은 와일드카드 2연전 3번 제러드, 4번 김재환, 5번 양석환, 6번 강승호가 약속이나 한 듯 헛방망이만 돌렸다. 제러드, 김재환, 양석환은 7타수 1안타 강승호는 7타수 무안타였다. 안타를 못 칠 수도 있지만 지나치게 큰 스윙으로만 일관했고 상대 변화구에 속수무책 방망이가 돌아갔다. 말 그대로 '선풍기 스윙'만 하다가 중요한 2경기가 날아갔다.
양석환은 잠실구장 34홈런 타자로 이름을 남겼다. 김재환도 부진을 떨치고 29홈런으로 부활했다. 강승호도 18홈런으로 기대 이상이었다. 하지만 홈런 개수에 비해, 나머지 타격에 대한 영양가를 지적받는 것도 많았다. 홈런을 위해, 너무 큰 스윙만 고집하다보니 타율이나 출루율 등 지표가 너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얘기였다. 팀보다는 개인 성적에 무게가 쏠려있는 야구라는 의미였다.
그러다보니 긴장감이 넘치고, 1점 1점이 중요한 가을야구에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크게만 치던 선수들이 갑자기 팀 배팅을 하고, 장타에 대한 욕심을 줄이는 건 어려웠다. 반대로 KT 강백호는 방망이를 짧게 잡고 컨택트에 집중하는 모습이 극명히 대비됐다.
하지만 선수들만 탓할 수도 없다. 이 감독도 2년 동안 주전 선수들을 위협할 어린 경쟁자들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 감독은 "주전 야수들이 베테랑인데, 어린 선수들과 경쟁이 안된다. 주전과 백업 실력 차이가 크다. 주요 선수들만 중용할 수밖에 없는 게 문제점인 것 같다. 이 격차를 줄여야 강팀이 될 수 있다. 이대로 흘러가버리는 팀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 감독은 내-외야 2년간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많이 줬다. 하지만 성적 압박을 받으면 다시 옛날로 돌아왔다. 가장 대표적인 게 유격수 김재호. 아무리 세대교체를 해보려 해도, 선수들이 올라오지 않으니 결국 시즌 막판에는 김재호를 찾았다. 이러니 어린 선수들이 더 못 큰다. '결국 우리는 밀린다'는 마음을 갖고 기회를 받다보니 조급해진다. 이건 감독이 '내 개인 성공과 명예 등은 필요 없다. 잘려도 좋다'는 강한 마음으로 끌어가야 하는 작업이었다. 잘 하다, 내리막을 탔을 때 인내로 기다려줬는지 돌이켜봐야 한다.
KIA 타이거즈의 경우 시즌 전 김도영에게 붙박이 3번-3루수 자리를 만들어줬다. 시즌 초반 부진했지만, 믿음 속에 기회를 줬다. 롯데 자이언츠도 김태형 감독이 뚝심으로 기회를 줬더니 나승엽, 고승민 등이 주전급 타자로 성장했다.
두산에는 김도영 같은 선수가 없는 데 어떻게 키우냐고 한다면, 이는 스카우트팀의 잘못일 수도 있다. 두산도 다른 팀들과 똑같은 기회 속에 선수를 뽑는다. 그런데 기회를 줘도 성장을 못하는 선수가 반복해서 나온다는 건, 팀 분위기와 문화도 중요하겠지만 애초에 싹을 잘못 틔웠을 가능성도 배제해서는 안된다.
김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