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성원 기자]'팩트'만 보자.
정몽규 대한축구협회(KFA) 회장이 당시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를 이끌던 정해성 위원장의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1순위인 홍명보 감독을 낙점했더라면 이 사단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성에 안찬듯 정 위원장에게 유럽으로 날아가 다비드 바그너 전 노리치시티 감독, 거스 포옛 전 그리스 대표팀 감독과 직접 면담할 것을 지시했다.
몸도, 마음도 지친 정 위원장은 사퇴했고, 일부 전강위원들도 동반 사임했다. 이임생 기술총괄이사가 협상을 이어갔지만, 마지막 행정적인 절차는 미흡했다. 아무리 동의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남은 전강위원들에게는 홍 감독의 선임 사실을 먼저 공지했어야 했다. '비밀 유지'를 위한 해명은 결국은 '좋은 먹잇감'으로 돌아왔다.
박주호 전 전강위원은 만약 자신이 추천한 바그너 감독이 A대표팀 사령탑에 선임됐더라면 이 정도로 논란을 일으켰을까.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면 되는 유튜버들은 또 어떤가. 정치권마저 가세한 2024년의 한국 축구는 흑역사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선을 넘은 '외풍'은 더 큰 폭풍이 돼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스러운 전망에는 모두가 귀를 닫았다.
이 가운데 축구인 중에는 이례적으로 김판곤 울산 HD 감독이 '용기'를 냈다. 그는 2018년 행정가로 변신해 국가대표 감독선임위원장을 지냈다. 김 감독이 영입한 인물이 바로 파울루 벤투 감독이다. 성공작이었다. 벤투 감독은 2022년 카타르월드컵에서 한국 축구에 12년 만의 16강 진출을 선물했다. 김 감독이 산파 역할을 했다.
말레이시아대표팀을 이끌었던 그는 지난 7월 국내 축구계로 돌아왔다. 울산의 지휘봉을 잡았다. 김 감독은 27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전하나시티즌과의 K리그1 32라운드 원정경기 후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처음온 후 이런 질문이 올 때마다 말해야 할 타이밍을 찾았다. 오늘은 이긴 날이라 타이밍상 오늘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우리가 코끼리의 다리만 보면 코끼리가 이렇게 생긴줄 안다"며 말문을 열었다. K리그1 3년 연속 정상을 노리는 울산은 이날 대전을 1대0으로 꺾고 선두 자리를 굳게 지켰다.
홍 감독의 '특혜 시비'를 먼저 화두에 올려놓았다. 일각에선 홍 감독이 다른 외국인 감독 후보와는 달리 면접도 보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있다.
김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파울루 벤투 감독을 내가 선임할 때 검증한 부분을 가지고 모든 감독을 다 검증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약간의 오해가 있는 것 같다. 벤투 감독을 검증하고 싶었던 것은 중국에서 실패했고 브라질에서도 실패했다. 그리스에서도 조금 의심이 있었다. 그 부분에서 확신이 없을 때는, 이 부분에서 완전히 매력이 있어서 원하는 감독이 아니었기에 검증을 요구했고, 검증을 잘했다고 생각한다"며 "대표팀 감독급은 국내에서든, 외국에서든 최고 레벨의 지도자에게 PPT를 요구하는 건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홍 감독은 2009년 이집트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8강, 2012년 런던올림픽에선 축구 사상 첫 동메달을 선물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선 아픔이 있었다. 그러나 불가항력이었다. 월드컵 티켓을 이미 거머쥔 A대표팀을 '유일한 대안'이라는 미명하에 등 떠밀려 맡았다. 결국 시간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홍 감독은 꽤 오랫동안 '야인 생활'을 하다 울산에서 재기에 성공했다. 그는 2022년 17년 만의 K리그1 우승컵을 선물했고, 지난해에는 창단 후 첫 2연패를 달성했다. 국내 지도자 중에는 단연 '최고'의 커리어다.
김 감독은 당시 벤투 감독의 위 순위였던 에르베 르나르와 카를로스 케이로스, 키케 플로레스 감독에 대해서도 장황하게 이야기했다.
"난 르나르 감독에게 '네가 지구 어디 끝에 있으면 끝에 가고, 아프리카 있으며 아프리카가고, 유럽가면 유럽가고, 나 한 번만 만나 달라'고 그랬다. 가서 내가 오히려 준비해 간 비디오 보여주며 우리나라가 이런 나라다라고 이야기했다. 왜냐하며 검증을 다했다. 그분은 아프리카에서 두 번이나 네이션스컵에서 우승했다. 아주 잠비아 같은 나라들이다. 라커룸에서 리더십이나 선수들 장악력이나, 경기를 지배하거나, 통제하는거나 최고의 감독이었다. 제3자를 통해 성품을 알아봐도 너무 좋은 사람이라고 하길래 '네가 오면 좋겠다'고 사정을 했다. '네가 공항에 나타나는 날 우리가 난리가 날 것'이라고 했다. 그 사람이 기다려달라고 하길래, 얼마든지 기다려주겠다고 했다. 르나르는 왕을 설득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내가 어떻게 그 사람보고 PPT를 요구하고, 전술 운용을 어떻게 할거냐, 난 그 말은 못한다. 단지 내가 르나르 감독에게 확인한 것은 당신이 오는 데 있어서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패션을 보여달라고 했다. 정말 오고싶은 마음이 있는지, 한국에서 일할 의지가 있는지. 그런 것 했을 때 '자기에게 중요한 자리고, 나는 가고싶고, 인생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했다. 모든 것이 그런 검증이었다. 한국에 와서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다고 했다. 케이로스도 마찬가지다. 그 또한 모든 것이 검증됐다. 전술적으로 맨유 수석 코치, 아시아에서 톱이었다. 그런 감독에게 왜 PPT를 요구하나. 이란 같이 우리를 아시아 최고로 만들어달라고 했다. 키케 플로레스도 내가 비디오 보여줬다. 오면 대박날 것이라고 했다. 오해를 안하면 좋겠다. 우리가 어떤 스카우트 개념으로 갈 때는 스카우트 개념이다."
김 감독은 KFA의 감독 선임과정은 아쉬움이 있다고 분명히 했다. 그는 "아시안컵이 끝나고 대한축구협회가 우리나라 대표팀이 어떤 지도자를 모셔야 할 방향성을 설정한다면 완전히 오합지졸이 된 팀워크를 누가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수습을 할 것이며, 선후배도 없는 상황에서 누가 원팀을 만들 감독을 찾는 것 같았다. 그러면 '이런 목적을 갖고, 이렇게 찾는다'고 국민과 미디어를 설득만 잘했다면 이런 사태는 안 왔을 것"이라며 "아마도 국민이 오히려 아쉬움이 있고, 열받고, K리그 감독을 빼가고해도 오히려 잘 선택했다고 박수를 쳐 줬을 것이다. 그래서 너무 안타깝다. 왜 위원회 안에서조차 방향 설정이 되지 않고, 어떤 사람은 한국인, 어떤 사람은 외국인을 뽑아야 할 것 같다고, 갈리고 오해가 있는지 모르겠다. 아주 간단한 문제에서 오해가 시작됐다"고 전했다.
그리고 현재의 분위기에는 개탄했다. 김 감독은 "지금 지혜롭게 에너지를 어디에 써야 하느냐. 팀이 정비를 해서 벌써 2경기를 했다. 다음 2경기가 '내일모레'다. 지금 이런데 에너지 쏟고, 감독 면박주고, 힘을 빼고, 팀을 와해시키고"라며 분개한 후 "정치하시는 분이나 유튜브 하시는 분이나,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지혜롭게 봐야 한다. 월드컵 못 나가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너무 속상하다"고 격앙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11회 연속 본선 진출을 향해 첫 발을 뗀 홍 감독은 다음달 A매치 2연전을 다시 지휘한다. 당장 30일에는 2026년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 3, 4차전에 출전할 태극전사들을 발표한다.
김 감독은 마지막으로 "실수는 있어도 두 분의 위원장님이 너무 안타깝다. 대한축구협회에 한 마디 하겠다. 위원장에게 대표팀을 운영하고 감독을 선임하고, 평가하고 그런 모든 권한을 줬을 때 어떤 결과가 나왔나. 가장 강력한 대표팀이 나왔다. 왜 어느날 계약기간 중에 있는 사람에게 그 권한을 빼앗고, 축구협회 내부에서 누가 왜 이런 결정을 했는지, 이렇게 대표팀을 어렵게 만들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지금 이 사태를 빨리 수습해야 한다"며 "내일모레 대표팀 명단이 발표된다. 감독이 집중해야 할 때다. 나중에 평가할 수 있는 시기가 있다"고 기다림을 요구했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