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초 정원 관련 문화센터
(전주=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나무에도 여백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래야 바람이 통해서 나무가 썩지 않아요."
"조릿대는 강하게 쳐 줍니다. 절대 죽지 않으니 걱정 안 해도 돼요."
"나무수국 가지를 지표에 가깝게 바짝 잘라주면 위쪽으로 잘 자라요. 그렇지 않으면 가지가 땅 위를 옆으로 기지요."
전주 정원문화센터의 야외 현장 교육인 정원유지관리 교육에 참여한 '식집사'들의 통찰과 안목은 만만치 않았다.
◇ "나도 식집사"…꿈꾸는 시민 정원사
교육에 참여한 '식물 사랑' 전주 시민 식집사들은 가지와 잎이 빽빽이 자란 쥐똥나무와 나무수국을 솎아 주고, 화단에서 다른 식물의 영역을 침범하는 조릿대를 말끔히 깎아 주기도 했다.
식집사란 반려동물 돌보듯 식물에 큰 애정을 가진 사람들을 일컫는 신조어다.
정원문화센터는 정원유지관리 방법을 배우려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현장 교육을 실시한다.
'천만그루 정원도시'를 자처하는 전주의 간선도로인 백제대로 변에 있는 덕진소방서 앞 가로띠 녹지에서 최근 야외 교육 시간을 가졌다.
정원도시를 지향하면서 전주에서는 자투리땅이나, 가로띠 녹지의 공간들이 새롭게 정원으로 탄생하고 있다.
◇ 정원 가꾸기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사랑방'…정원문화센터
"아이와 함께 가기 좋아요"
나만의 정원을 가꾸고 싶을 때 어떻게 시작할지 막막하다.
언제 어떤 나무를 심어야 할지, 나무는 어디서 구입해야 할지, 전지 전정은 어떻게 할지…. 모든 것이 어렵다. 이럴 때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정원문화센터이다.
이 센터는 전국에서 보기 드물게 '정원'을 주제로 한 문화 공간이다. 생활 속에 정원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설립됐다.
주택가 작은 공원을 다시 다듬고, 오래된 도서관을 개조해 지난해 10월 개관한 정원문화센터의 등장은 내 마음의 정원, 반려 식물, 실내 정원 등을 향한 관심이 커지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서구 선진국에서처럼 정원 가꾸기가 어느덧 문화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예쁜 정원이 없는 카페, 전시관은 삭막하게 느껴진다. 매혹적인 개인 정원도 적지 않다.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온 정원 문화를 감지하게 하는 현상들이다.
정원문화센터에 들어서니 바닥 분수대에서 하얗고 시원스러운 물줄기가 악보의 음표처럼 춤추듯 튀어 오르고 있었다.
센터와 인근 주택가를 가르는 울타리는 눈에 띄지 않는다.
주민이 데리고 온 '댕댕이'는 부드러운 잔디 위에서 황홀한 듯 몸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센터에는 신기한 식물이 가득한 아열대 식물원, 나만의 정원 꿈을 키울 수 있는 앙증맞은 도서관도 있다.
정원문화센터는 이에 더해 실외 정원, 식물클리닉, 교육장, 강의실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어린아이, 청소년과 함께 들러도 좋은 곳이었다.
◇ 가을에는 꽃보다 억새…하늘하늘 '그라스 정원'
센터의 마당, 즉 실외 정원은 요즘 정원 가꾸기의 다양한 추세를 담고 있었다.
정원작가, 센터에서 교육받은 시민 정원사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이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고, 방문객에게 치유를 선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화려한 색감의 큰 여름꽃들이 흐드러진 화단이 눈길을 먼저 사로잡았다.
상추, 오이, 호박 등이 심긴 텃밭 정원은 소박하고 정겨웠다. 텃밭 정원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다양한 채소를 심고, 자라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아이들은 수확 체험을 통해 자연의 신비를 느낀다. 실습정원에서는 작은 정원을 계획해보고 정원식물을 직접 심어볼 수 있다.
깃털처럼 부드럽고 가벼운 느낌을 주는 억새류를 주로 심는 그라스 정원은 최신 정원 가꾸기 추세에 속한다.
자주 꽃을 갈아 심어야 하는 꽃 정원보다 손질하기 편하다.
하늘거리는 억새들이 마음을 쓰다듬는 듯한 그라스 정원은 센터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기업들이 참여하는 숲, 나비 정원 등이 실외 정원에 추가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 이국적 에너지 충전소 '아열대 식물원'
누구나 식집사가 될 수 있다!…식물 클리닉이 도와줘요
아열대 식물원은 열대, 아열대 지역에서 자라는 식물들을 전시한 온실 공간이다.
워싱턴야자, 코코스야자, 피닉스야자 등 17종의 야자수를 만날 수 있다.
바나나, 바오바브나무, 파파야 나무 등 일상에서 접할 수 없는 식물들은 새로운 활력과 휴식을 안긴다.
반려 식물을 키우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식물클리닉에서는 식물을 키우면서 느끼는 어려움을 상담할 수 있다.
무료로 식물을 치료해주고, 실내에서 키우기 적합한 식물도 추천한다.
클리닉 옆에는 소규모 정원마켓이 있었다. 정원 관리에 쓰이는 용품을 전시하는 곳이다.
전주에서 정원 관련 용품을 판매하는 업체의 제품을 구경하고, 업체를 통해 구입할 수 있도록 홍보해 정원산업 발전에 기여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코너이다.
다양한 업체가 마켓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입점 업체는 정기적으로 변경된다.
◇ '정원의 꿈'이 자라는 공간…정원문화도서관
정원과 관련된 일반 및 전문 서적을 모아놓았다.
아열대 식물원을 내려다보는 곳에 자리 잡은 이 도서관은 책과 함께 힐링의 시간을 보내고, 책을 통해 나만의 정원 꿈을 꿀 수 있는 장소이다.
도서는 배움, 채움, 세움, 키움, 다움, 도움 등 6개 분야로 구분돼 비치돼 있다.
배움은 식물, 동물, 생태에 관한 책 전시대이다.
채움은 에세이 코너, 세움은 정원 가꾸기와 반려 식물 등에 관한 책 전시대이다.
키움 코너에는 예술과 컬러링, 다움 코너에는 어린이 도서가 있다. 도감, 전문 서적은 도움 코너에 있다.
◇ '초록 정원사'를 길러내는 정원교육
센터에서 교육받은 시민 정원사를 '초록 정원사'라고 부른다.
초록 정원사를 많이 배출하고, 도시를 푸르게 가꾸는 문화를 확산시켜 시민에게 잃어버린 초록을 돌려주겠다는 것은 센터의 꿈이다.
정원교육은 정원문화센터가 가장 역점을 두는 사업이다.
실외 현장 교육과 실내 이론 교육으로 나뉜다.
야외 교육은 초록정원사 양성, 정원문화특강, 수목 전지 전정 과정, 정원 유지관리, 텃밭 정원, 정원 디자인과 조성, 정원 산책, 정원 식물 소개, 아름다운 정원 탐방 등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초록정원사 양성 교육은 해마다 정원에 관심 있는 시민 30명을 선발해 약 70시간에 걸쳐 진행한다.
수료 후 자신의 정원을 예쁘게 가꾸거나 전주시의 작은 정원 관리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정원문화특강은 다양한 전문가를 초청해 진행된다. 올해는 정원 토양 만들기, 사계절 수국 관리, 장미정원 관리, 실내에서 키우기 좋은 정원 식물과 관리 방안, 전국의 아름다운 정원 탐방 등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되고 있다.
수목 전지를 모르면 정원 꿈을 꾸기 쉽지 않다. 수목 전지 교육 신청자가 많아 센터는 이 교육 시간을 늘리고 있다.
연필로 정원 식물을 스케치하고 색연필로 색칠하는 정원식물 쉽게 그리기, 도자기 화분 만들기, 국화 분재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 참여자들이 여는 작품 전시회는 더 많은 시민이 소통하는 자리가 된다.
◇ 정원과 함께하는 삶…"나와 타인을 행복하게 해요"
전주의 아름다운 정원들
정원에 대한 관심을 키우다 보면 아름다운 정원에 가보고 싶은 욕구가 일기 마련이다.
공들여 깔끔하게 다듬은 정원을 많이 접하는 것은 꿈꾸는 정원사에게 큰 공부가 된다.
센터는 전국의 유명 정원을 대상으로 해설이 있는 정원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잘 가꾸어진 개인 소유의 '숨은' 정원을 탐방하기도 한다.
완산구 정광량 씨 주택 정원, 덕진구와 완산구에 있는 카페인 아이비플레이스와 디오차드의 정원, 전주월드컵경기장 작가정원도 탐방 대상인 아름다운 정원 중 하나이다.
목본과 초본이 적절히 섞인 정 씨 정원은 정갈하다. 아이비플레이스에는 수종이 다양하고 디오차드에는 쉼, 여백의 공간이 돋보인다.
월드컵공원 작가정원은 정원 디자인 작가들이 시의 지원을 받아 조성했다.
한식, 한옥, 한지가 유명한 전주는 가장 한국적인 전통 도시이자 문화가 강한 도시로 꼽힌다.
한옥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눈을 다시 뜨게 한 곳이 전주 한옥마을이다.
근년에는 시민에게 외면받던 도서관을 복합문화공간으로 혁신해 '책의 도시'로 국내는 물론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문화 도시 전주가 꽃과 나무, 자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커지는 흐름을 놓치지 않고 정원문화 기관을 전국에서 처음 출범시킨 것은 우연이 아닐 듯싶어 반갑다.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4년 9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