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2위의 품격, 이라고 할까요?"
골든글러브는 프로야구 한시즌을 마무리하는 대표 행사다.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들에겐 골든글러브라는 트로피를 부여하는 시상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수상 가능성이 낮은 선수들은 참석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자리를 채우는 것도 영광이고, 수상자를 바라보며 동기부여를 얻는다는 선수도 있지만, 승부욕 강한 프로선수들에겐 견디기 힘든 부분도 있다.
그런데 지난해 골든글러브 시상식에 KIA 타이거즈 박찬호가 나타났다. 박찬호로선 염원하던 3할 타율을 이뤄냈고, OPS(출루율+장타율)도 0.734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 시즌이었다.
한단계 발전을 이룬 만큼 수상의 기대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비슷한 성적에 더 나은 OPS(0.767)와 장타력,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에 주장 프리미엄까지 붙은 오지환의 수상이 유력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154대120으로 오지환이 골든글러브의 주인공이었다.
행사전 "2위의 품격을 보여드리기 위해 참석했다. 오지환 형과 함께 언급되는 것도 영광이고, 한발 다가섰다는 느낌을 즐기겠다"며 미소지었던 박찬호다. 그는 결과가 발표된 뒤 취재진에게 "34표, 지금 저와 오지환 선수의 차이가 이정도 아닐까. 어쨌든 2등"이라며 "야구 인생에서 언젠가는 한번 꼭 골든글러브를 받아보고 싶다. 올해는 시상식 현장 풍경을 익히러 온 것으로 하겠다"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런데 그 영광이 예상보다 빨리 다가올지도 모른다. 올해는 '우승 프리미엄'이 그에게 있을 가능성이 높다. KIA는 연일 정규시즌 우승까지의 매직넘버를 줄이고 있다. 투표는 정규시즌 종료 후 치러지긴 하지만, KIA는 전력상 유력한 한국시리즈 우승후보 1순위팀이기도 하다. 골든글러브 수상이 박찬호에게 있어 말 그대로 풍요로운 한해를 마무리하는 화룡점정이 될 수 있다.
개인 성적도 훌륭하다. 올시즌에도 타율 3할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장타력 부족(3할7푼6리)으로 OPS는 0.737이지만, 타율은 규정타석을 채운 10개 구단 유격수 중 1위다. 부상없이 꾸준한 출전을 이어온 결과 안타(142개)도 가장 많이 쳤다. 도루 성공률(57.1%)이 낮긴 하지만, 도루(16개)도 1위다. 유격수라는 포지션상 선수 평가의 중요 지표인 수비이닝(1034⅓이닝)도 마찬가지다.
당초 올해는 SSG 랜더스 박성한이 1순위로 꼽혔다. 하지만 2022년에 그랬듯 후반기 들어 성적 하락세가 뚜렷하다. 후반기 타율 2할5푼6리 OPS 0.731에 그치고 있다.
3할6푼5리의 출루율은 돋보이지만, 장타율은 박찬호보다도 낮다. 도루나 홈런 등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다른 무기가 없는 이상, 3할을 밑도는 타율이 아쉬운 지점. 만약 SSG가 가을야구에서 탈락한다면 이 또한 박성한에겐 악재가 될 수 있다.
새로운 바람에 '대포'까지 장착한 이재현(삼성 라이온즈)도 경쟁자다. 올해 14홈런으로 유격수 부문 전체 2위다. 1위 김휘집(15개·NC 다이노스)이 3루와 유격수를 오가느라 유격수 수비이닝이 500이닝 미만임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1위다. 거포답게 OPS(0.798)도 선두. 다만 잦은 부상으로 출전수가 부족하다. 경기수는 99경기, 수비이닝은 782⅓이닝에 불과하다.
유격수 포지션의 '절대강자'로 군림해온 오지환이 조만간 규정타석을 채울 경우 타격 성적은 여전히 위협적이다. 0.794의 OPS는 이재현 다음이고, 가을야구 프리미엄에 여전히 톱클래스로 평가받는 수비력도 건재하다. 하지만 최근 2시즌보다 올해 한풀 꺾인 모습인 것도 사실이고, 오지환은 이재현보다도 출전이 적다.
최근 유격수 골든글러브 계보는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 3년 연속) 김혜성(키움 히어로즈) 오지환(LG, 2년 연속)으로 이어졌다. 박찬호가 올해 새로운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