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오타니와 트라웃 만큼 인상적인 '서사(敍事)'를 쓴 듀오도 드물다.
1930년대 뉴욕 양키스 베이브 루스-루 게릭에 비견될 만큼 둘은 에인절스에서 '쌍포'로 유명세를 떨쳤다. 하지만 둘은 '불완전' 듀오였다. 오타니가 에인절스에 입단한 2018년부터 작년까지 6시즌 동안 한솥밥을 먹었지만, 건강한 몸으로 풀타임을 함께 한 시즌은 한 번도 없었다.
2020년까지는 오타니가 팔꿈치 수술로 인해 아직 슈퍼스타 반열에 오르기 전이었고, 2020년 이후로는 트라웃이 매년 크게 다쳐 정규 일정의 절반도 소화하지 못하고 부상자 명단(IL)서 세월을 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이 함께 라인업에 포진할 때면 10년 가까이 가을야구에 실패해 등을 돌린 에이절스 팬들도 열띤 응원을 보냈다.
오타니와 트라웃은 통산 30경기에서 동반 홈런을 날렸다. 해당 경기에서 에인절스는 21승9패를 기록했다. 오타니가 에인절스에서 마지막으로 뛴 작년에는 8경기에서 함께 홈런을 쳐 7승1패의 호성적을 이끌었다. 하지만 그들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에인절스에선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걸 깨달은 오타니는 지난해 12월 FA 시장에 나가 LA 다저스와 10년 7억달러(약 9355억원)에 역대 최고액 계약을 맺고 새 둥지를 틀었다. 오타니의 궁극적 목표는 월드시리즈 우승이다.
그러나 오타니는 그렇게 에인절스를 떠나면서 트라웃과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하지 못했다. 오타니는 작년 8월 초 팔꿈치 부상을 입어 8월 24일 신시내티 레즈전을 끝으로 투수로 시즌을 마감했고, 9월 들어서는 복사근 부상이 겹쳐 타자로도 시즌을 접었다. 결국 9월 20일 토미존 서저리를 받고 재활에 들어갔다. 오타니는 시즌 종료 직전 라커룸에서 짐을 정리하며 에인절스에 이별을 고했다.
트라웃도 사정은 비슷했다. 7월 초 오른손 유구골 골절상을 입고 두 달 가까이 쉰 트라웃은 8월 23일 신시내티전에 복귀했지만, 부상이 재발해 그대로 시즌을 마감했다. 둘이 함께 뛴 것은 8월 23일 에인절스타디움에서 열린 신시내티 레즈전이 마지막이었다.
겨울을 나고 스프링트레이닝이 한창이던 초봄 둘은 캠프에서 해후했다. 3월 6일 애리조나주 글렌데일 캐멀백랜치에서 열린 양 팀간 시범경기에서다. 외야에서 만난 두 선수는 뜨거운 포옹을 나눈 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어깨를 두드려줬다.
그러나 오타니가 트라웃의 얼굴을 그라운드에서 본 건 그게 마지막이었다. 올해 다저스와 에인절스의 맞대결, 즉 프리웨이시리즈는 총 4경기가 잡혀 있었다. 지난 6월 22~23일 다저스타디움에서 2경기, 그리고 지난 4~5일 에인절스타디움에서 2경기였다.
트라웃은 앞서 4월 30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전을 끝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올해도 부상을 피하지 못했다. 트라웃은 지난 5월 4일 왼 무릎 반월판 재건 수술을 받았다. 3개월 재활을 마치고 7월 말 마이너리그 재활 경기에 출전했지만, 부상이 재발하자 팀이 포스트시즌을 포기한 상황이라 그대로 시즌을 접기로 했다.
트라웃이 2019년 3월 12년 4억2650만달러(약 5700억원)에 연장계약을 한 뒤로 제대로 뛴 시즌은 생애 3번째 MVP에 오른 2019년과 단축시즌인 2020년 밖에 없다. 2021년 이후 부상이 잦았다. 2021년에는 오른쪽 장딴지, 2022년 허리, 2023년에는 왼손 부상으로 자리를 장기간 비웠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4년 동안 에인절스의 정규시즌 일정 648경기 가운데 트라웃이 출전한 건 불과 266경기다. 출석률이 41%에 그친다.
오타니는 이번에 이적 후 처음으로 에인절스타디움을 찾아 옛 동료들과 팬들로부터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하지만 그 현장에 트라웃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트라웃 만큼이나 부상이 잦았던 3루수 앤서니 렌던이 지난 4일 3회 3루타를 치고 베이스에 안착한 오타니를 보자 유쾌한 표정으로 재회의 인사를 나눴다.
50홈런-50도루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오타니는 현재 피칭 재활도 한창이다. 내년 개막전 등판이 목표다. 지난해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 결승에서 벌인 투수 오타니와 타자 트라웃의 맞대결은 아직도 레전드로 회자된다.
내년 투수로 돌아오는 오타니와 무릎 재활을 마칠 트라웃이 빅리그에서 첫 투타 맞대결을 벌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