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암=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홍명보호의 첫 걸음은 졸전이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A대표팀은 5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팔레스타인과의 2026년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 B조 1차전에서 0대0으로 비겼다. 홍명보호는 첫 판부터 불안한 경기력을 보이며 11회 연속 본선 진출을 향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한국은 이라크, 요르단, 팔레스타인, 오만, 쿠웨이트와 함께 B조에 속했다. 3차예선은 18개팀이 6개팀씩 3개조로 나뉘어 홈&어웨이로 풀리그를 치른다. 각조 1, 2위, 총 6개팀이 월드컵 본선 직행 티켓을 거머쥔다.
팔레스타인전은 북중미행을 향한 여정의 시작이자, 홍명보 감독의 '두번째' 데뷔전이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을 끝으로 A대표팀을 떠난 홍 감독은 2024년 7월, 10년만에 다시 A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울산 HD에서 성공시대를 써내려갔던 홍 감독은 다시 한번 '독이 든 성배'를 쥐었다. 국내파 지도자가 A대표팀을 이끄는 것은 2018년 러시아월드컵의 신태용 현 인도네시아 감독 이후 6년 만이다. 홍 감독의 계약기간은 2027년 1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리는 아시안컵까지다.
홍 감독 선임 후 여론은 들끓었다. 매끄럼지 않은 선임 과정에, 홍 감독의 거짓말 논란까지 이어졌다. 전력강화위원이었던 박주호의 내부 폭로에 이어 박지성, 이영표 등 '레전드' 출신들의 쓴소리까지 나왔다. '잡음'은 계속됐다. 홍 감독은 곧바로 유럽 출장길에 올랐다. 자신을 보좌할 외국인 코치 후보들을 직접 면담했다. 그 사이 손흥민(토트넘) 김민재(바이에른 뮌헨)를 비롯한 유럽파 태극전사들과도 만났다.
홍 감독을 보좌할 코치진이 완성됐다. 박건하 전 수원 삼성 감독(53), 김동진 킷치FC 감독대행(42), 김진규 FC서울 전력강화실장(39)을 대표팀 코치로 선임했다. 이어 포르투갈 출신의 주앙 아로소(52)가 수석코치겸 전술 코치로, 티아고 마이아(40)가 전술분석 코치로 합류했다. 아로소 코치는 파울루 벤투 전 대표팀 감독과 스포르팅 리스본에서 4년, 포르투갈 대표팀에서 4년, 총 8년을 함께 했다. 마이아 코치는 벤피카에서 활약했다.
26일에는 홍명보호 시즌2 1기 명단도 발표했다. 변화와 세대교체가 키워드였다. '고등윙어' 양민혁을 비롯해 황문기(이상 강원) 이한범(미트윌란) 최우진(인천) 등 4명이 최초 발탁됐다. 이강인(파리생제르맹)을 필두로 2000년대생이 7명으로 늘어났다. 홍 감독은 "안정적이면서 미래지향적인 선수들로 앞으로도 운영을 할 계획이다. 본선 경쟁력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변수도 있었다. 권경원(코르파칸 클럽)과 김문환(대전)이 부상으로 빠지고 대신 조유민(샤르자FC)과 황재원(대구)이 이름을 올렸다.
준비 기간은 짧았다. 대표팀의 핵심인 유럽파가 3일 합류하며, 이틀째에 완전체가 됐다. 홍 감독은 당초 미팅 후 훈련을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선수들의 컨디션을 감안해 4일에서야 미팅을 진행할 정도로 컨디션 관리에 큰 공을 들였다. 사실상 준비한 시간은 단 하루, 홍 감독은 "첫 경기다. 많은 분의 기대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많은 득점을 바라고 있고, 그렇게 훈련도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승리에 초점을 맞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첫 경기에서의 승리"라며 출사표를 던졌다.
상대 팔레스타인은 매우 낯선 팀이다. A대표팀과 격돌한 적이 없다. 한국 남녀 대표팀을 통틀어 단 한 차례 격돌했다. 객관적 전력에서는 한국이 우위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 한국은 23위, 팔레스타인은 96위다. 단, 팔레스타인의 귀화 선수들은 경계 대상이다. 공격수 웨삼 아부 알리(알아흘리)는 덴마크 17세, 18세, 19세 이하 대표팀을 거쳤다. 지난 3월 팔레스타인축구협회의 부름을 받아 6월 레바논과의 월드컵 2차예선 경기에서 팔레스타인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이밖에 스웨덴 A대표팀 경기도 소화했던 오마르 파라이(AIK), 무스타파 제이단(로젠보리)이 팔레스타인 대표팀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한국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홍 감독은 베스트 라인업으로 첫 경기에 나섰다. 유럽파 3대장이 모두 나섰다. 주민규(울산)이 최전방에 서고, 손흥민 이재성(마인츠) 이강인이 2선에 자리했다. 중원에는 페예노르트 이적을 확정지은 황인범과 정우영(울산)이 포진했다. 포백은 설영우(즈베즈다)-김영권(울산)-김민재-황문기(강원)가 이뤘다. 황문기는 이번이 A매치 데뷔전이다. 골문은 조현우(울산)가 지켰다. 황희찬(울버햄턴) 엄지성(스완지시티) 오세훈(마치다) 등은 벤치에서 출발했다. 양민혁 최우진 이한범은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경기 전 부터 어두운 분위기가 연출됐다. 붉은악마 자리에는 '안티 분위기'가 들끓었다. 이미 붉은악마를 상징하는 걸개가 거꾸로 걸렸다. 이어 '한국 축구의 암흑 시대', '피노키홍', '축협 느그들 참 싫다', '선수는 1류, 회장은=?!' 등의 플래카드가 관중석 곳곳에 놓였다. 국가 연주가 끝난 뒤에는 "정몽규 나가", 이른바 '안티 콜'이 울려 퍼졌다. 홍명보 감독이 대형 전광판에 등장할 때마다 야유가 나왔다. 선수들의 얼굴이 비췄을때 나온 어마어마한 함성과 대조를 이뤘다.
킥오프 휘슬이 울렸다. 손흥민이 전반 1분만에 코너킥을 얻어내며 산뜻하게 출발하는 듯 했지만 이내 위기를 맞았다. 전반 3분 알바타트가 중앙으로 돌파하며 찍어준 볼이 세얌에게 연결됐다. 세얌이 몸을 날려 슈팅으로 연결했지만, 다행히 제대로 맞지 않았다. 한국은 왼쪽에 자리한 손흥민을 중심으로 공격을 노렸지만, 패스미스가 너무 많았다. 제대로 공을 전개하지 못하며 공격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17분 한국의 첫 슈팅이 나왔다. 손흥민이 왼쪽에서 오른발로 올려준 크로스를 주민규가 뒤로 몸을 날려 머리에 맞췄다. 크로스바를 넘어갔다.
22분 가슴 철렁한 장면이 나왔다. 칸티야나의 프리킥이 하메드의 머리 맞고, 세얌에게 향했다. 세얌이 밀어넣었지만, 다행히 하메드의 위치가 오프사이드였다. 26분 또 한번 프리킥 상황에서 하메드의 머리에 맞았지만, 조현우 정면으로 향했다. 한국은 39분 오른쪽에서 손흥민이 올린 코너킥이 주민규의 헤더로 연결됐다. 하지만 골대를 벗어났다. 40분 한국이 전반 들어 가장 좋은 기회를 만들었다. 이강인이 황인범과 2대1 패스를 받아 절묘한 개인기로 수비를 제친 후 골문 앞까지 향했다. 오른발 슈팅은 아쉽게 골키퍼 선방에 걸렸다.
42분 황인범의 결정적 찬스를 만들었다. 이강인의 멋진 로빙패스를 받아 절묘한 트래핑으로 수비 한명을 제쳤다. 곧바로 왼발 슈팅을 시도했지만, 아쉽게 옆그물을 때렸다. 전반은 0-0으로 마무리됐다.
홍 감독이 후반 시작과 함께 변화를 줬다. 주민규를 빼고 오세훈을 넣었다. 한국이 초반 공을 소유하며 기회를 엿봤다. 후반 5분 황인범이 이강인의 패스를 받아 왼발 슈팅을 날렸다. 빗나갔다. 6분 팔레스타인이 반격했다. 아부일리가 위협적인 중거리 슈팅을 시도했다. 10분 자베르의 왼발 슈팅은 조현우 정면으로 향했다. 좀처럼 공격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한국은 두번째 변화를 줬다. 12분 이재성이 나오고 황희찬이 들어갔다. 위치 변화는 없었다.
14분 한국이 결정적 찬스를 놓쳤다. 설영우가 왼쪽에서 등을 지던 오세훈한테 내줬다. 오세훈의 리턴패스가 손흥민에게 갔고, 손흥민이 잡는 순간 수비 맞고 흘렀다. 오른쪽에서 노마크로 있던 이강인의 왼발에 걸렸지만, 슈팅은 아쉽게도 뜨고 말았다. 17분에는 황인범이 인터셉트 후 손흥민에게 찔러줬다. 손흥민이 왼쪽에서 오른발 감아차기를 시도했지만, 수비 맞고 나왔다. 18분 또 한번의 좋은 찬스가 만들어졌다. 이강인이 중앙으로 이동하며 절묘한 왼발킥을 문전에 띄웠다. 오세훈이 헤더로 연결했지만, 팔레스타인 골키퍼의 슈퍼세이브에 막혔다.
변수가 생겼다. 분 좋은 움직임을 보여주던 설영우가 부상으로 나갔다. 홍 감독은 아예 좌우 풀백을 모두 바꿨다. 이명재(울산)와 황재원(대구)이 투입됐다. 25분 황희찬이 뒷공간을 허물며 박스 안 오른쪽에서 컷백을 시도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뛰어들던 선수에게 연결되지 않았다.
27분 이강인이 돌파하며 아크 정면에서 프리킥 기회를 얻었다. 이강인이 직접 처리했지만, 멋진 궤적에도 상대 골키퍼의 슈퍼세이브에 막혔다. 34분에는 이강인이 후방에서 손흥민을 향해 기가 막힌 패스가 연결했다. 하지만 골키퍼와 맞선 상황에서 슈팅 하기 직전 마지막 트래핑이 길었다. 이어 실점 위기를 맞았다. 36분 오른쪽에서 온 크로스가 다바그의 머리에 맞았다. 다행히 골대를 넘어갔다.
38분 이강인이 오른쪽에서 올린 절묘한 크로스가 오세훈 헤더로 연결됐지만, 골키퍼 선방에 걸렸다. 다급한 홍 감독은 분 황인범을 빼고 이동경(김천)을 넣었다. 운까지 따르지 않았다. 42분 후방에서 넘어온 패스가 손흥민에게 연결됐다. 손흥민이 골키퍼까지 제친 후 빈골대에 슈팅을 시도했지만, 안타깝게도 골대를 맞고 나왔다. 한국은 총공세에 나섰다. 하지만 오히려 역습에 무너질 뻔 했다. 아부일리가 조현우와 맞서는 기회를 잡았지만, 다행히 슈팅은 조현우 정면으로 향했다.
한국은 마지막까지 사력을 다했다. 47분 이강인이 돌파하며 때린 왼발 슈팅은 골키퍼 정면으로 향했다. 한국은 계속 팔레스타인 골문을 두드렸지만 마무리가 아쉬웠다. 황재원의 크로스를 받은 오세훈의 다이빙 헤더마저 빗나가며, 결국 경기는 0대0으로 마무리됐다. 팔레스타인전에서 충격의 무승부를 기록한 홍명보호는 10일 오후 11시(한국시각) 오만 무스카트 술탄카부스경기장에서 오만과 2차전을 갖는다.
상암=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