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세계 장애인체육계가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와 '장애인체육의 키다리아저씨' 배동현 BDH재단이 장애인 체육 환경이 열악한 나라들에 뿌린 '도움의 열매'가 아름다운 결실을 맺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인권조차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살았던 장애인이 한국의 도움으로 당당히 국가를 대표해 2024년 파리패럴림픽에 참가했다.
호주 동쪽 태평양에 있는 작은 섬나라 바누아투의 창던지기 선수 켄 카후(25)가 대표적이다. 그는 창이 없어 자신이 일하던 아보카도 농장에 널린 아보카도 열매를 던지며 훈련하던 선수였다. 패럴림픽 참가는 상상조차 못했다. 하지만 대한장애인체육회와 BDH재단의 도움 속에 성장해 어엿한 '패럴림피언'이 됐다.
카후는 지난 3일 오후(한국시각) 프랑스 파리의 스타드 프랑스에서 열린 패럴림픽 육상 남자 창던지기(스포츠등급 F64) 결선에서 52m01을 기록, 10명 중 9위에 올랐다. 1차 시기에선 파울을 기록했지만, 2차 시기에서 개인 최고 기록(48m17)을 갈아치웠다. 메달권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첫 패럴림픽 출전이라는 꿈을 이뤘다.
인구 33명에 불과한 바누아투는 80여개의 섬으로 이뤄졌지만, 이중 65개의 섬은 무인도다. 수도인 빌라에는 공항과 현대적인 건물이 있지만, 일부 섬에서는 아직도 원시에 가까운 삶을 영위하는 부족들도 있다. 바누아투는 지난 2000년 시드니패럴림픽과 2008년 베이징패럴림픽에 참가한 적이 있다. 시드니대회에는 육상에서 2명, 베이징에는 역도선수 1명을 보냈다. 그러나 이후엔 좀처럼 선수를 내보내지 못했다. 비용과 시설 등 현실적인 문제가 컸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선 여자 투포환의 엘리 에녹(35)과 카후까지 총 2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바누아투가 16년 만에 패럴림픽 무대에 돌아올 수 있던 배경에는 대한장애인체육회와 BDH재단이 내민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BDH재단은 2018년 평창 동계패럴림픽 선수단장을 역임한 배동현 창성그룹 부회장이 설립해 이사장을 맡고 있다. 배동현 이사장은 더 많은 장애인 체육을 후원하기 위해 아예 재단을 만들었다.
배동현 이사장은 중남미와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장애인 체육 여건이 열악한 나라들을 도왔다. 정진완 대한장애인체육회장과 함께 바누아투와 중남미 국가들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해당국가 선수들이 국제스포츠등급을 받을 수 있도록 대회 개최와 출전을 지원하고, 각국 패럴림픽위원회를 후원하기 위해서 였다.
지난해 10월엔 대한장애인체육회와 오세아니아패럴림픽위원회(OPC), BDH재단의 3자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바누아투를 비롯한 6개 나라의 장애인 체육 지원을 약속했다. 바누아투에선 올해 1월부터는 장애인육상선수 발굴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카후 역시 BDH재단의 도움으로 처음으로 패럴림픽에 나선 선수들 중 하나다. 19살 때인 2018년 장애인 스포츠를 시작한 카누는 지역 대회에만 출전했지만, 큰 국제대회에는 나서지 못했다. 아보카도를 아무리 던져봐야 창던지기 실력은 늘지 않는다. 국제스포츠등급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도움을 받아 체계적인 훈련을 하고, 장비까지 갖춰 패럴림픽에 출전하게 됐다..
카후는 에녹과 함께 3일 팀 파라코리아 하우스를 방문해 배 이사장을 다시 만났다. 카후는 "패럴림픽에서 바누아투를 대표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며 "그 전에는 한국이란 나라를 아예 몰랐다. 한국인들과 BDH재단에 너무나 감사하다"고 했다. 마거릿 맥팔레인 바누아투패럴림픽위원장은 "배동현 이사장의 도움으로 우리 선수들이 패럴림픽에 나설 수 있었고, 해외 훈련도 할 수 있었다. 고맙다"고 했다.
폴 버드 OPC 위원장은 "오세아니아 지역 스포츠 개발도상국 6개국이 패럴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다. 그 전까지 한 번도 받지 못한 지원이었다. 호주처럼 패럴림픽 스포츠가 발전한 나라도 있기 때문에 서로 협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동현 이사장은 "내가 더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배 이사장은 과거 바누아투 방문 경험을 밝힌 적이 있다. 당시 그는 "장애인들은 인격체로 대우받지 못하는 환경이었다. 장애인 자식을 남한테 보이기 부끄럽다고 밖에 못 나가게 하기도 했다. 그런데 스포츠로 인식이 변했다. 장애인에게 돌멩이를 던지던 사람들이 국가대표선수가 됐다고 하니 꽃다발을 던져주더라. 이 선수들을 위해 모금 활동도 펼쳤다. 그 모습을 보며 정말 뿌듯했다"고 놀라운 경험담을 이야기 했었다.
정진완 회장은 "한국에서 국제 스포츠캠프를 10년 전부터 열고 있고, BDH재단의 도움을 받아 3년 전부터 다른 나라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장애인 스포츠 초기에 우리도 다른 나라들의 도움을 받았는데 이제는 국제 스포츠계를 위해 우리가 지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덕분에 이번 패럴림픽 기간에 다른 여러나라들이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고 바라보고 있다. 나에게도 함께 연대하자는 이야기를 많이 해온다"고 밝혔다.
파리(프랑스)=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