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금메달 13개, 런던올림픽 이후 12년 만에 최고 성적과 함께 금의환향한 파리올림픽 선수단의 입국장 해단식 현장이 논란이다.
파리올림픽 일정을 마친 대한민국 선수단 본진 50여명이 1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귀국했다. 공항 입국장에는 각 종목 단체 관계자들과 팬들, 취재진이 구름처럼 몰렸다.
성대한 해단식을 위해 인천공항공사가 제시한 장소는 입국장 지하1층 상설문화공간인 '그레이트홀'이었다. 유인촌 문화체육부 장관, 장미란 문체부 제2차관과 대한체육회가 각 협회를 통해 부른 김우진(양궁), 양지인(사격), 허미미, 김하윤(유도), 구본길(펜싱), 김우민(수영) 등 귀국한 메달리스트들이 해단식 참석을 위해 공항으로 달려와 이곳에서 본진 귀국을 기다렸다. 파리올림픽 경과보고 후 기자회견, 개별 인터뷰 등 축하 및 환영 행사가 예정됐고, 플래카드와 백월, 선수들을 위한 의자와 무대도 세팅됐다.
한편 같은 시각 40분 지연 착륙한 대한민국 선수단의 위탁 수하물 구역에선 해단식 장소 변경과 관련 일대 소동이 일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장소를 절대 옮길 수 없다"고 언성을 높였다. 대한체육회가 인천국제공항공사에 공문으로 협조 요청한 해단식 장소는 1층 입국장 게이트B 앞이었다. 인천공항공사 관계자가 안으로 들어와 일반 승객들과 뒤섞여 혼잡한 입국장 대신 '그레이트홀'에 해단식 장소를 준비했다고 하자 이 회장은 "해단식 일정을 5분 안에 끝낼 것이다. 5분이면 된다"고 재차 설명하며 이동 불가를 알렸다.
이기흥 회장은 "입국장에서 단기를 반납하고 해단식을 간단하게 끝낼 것이다. 보다시피 선수단 짐이 너무 많다. 무엇보다 '근대5종' 사격 총기도 있다. 총기는 이동이 불가하다"고 설명했다. "이틀 전에 해단식 이야기를 문체부 체육협력관을 통해 들었지만 짧게 끝나니 (장·차관을)굳이 오시지 말라고 했는데 장소를 멋대로 잡았다. 이동은 불가능하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이와 관련 문체부는 "해단식 장소는 문체부가 잡은 게 아니라 인천공항공사 측에서 잡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날 해단식 불협화음은 파리 출발 전부터 예고됐다. 올림픽 현장서도 '개막식 국호 호명 오류 사건'' 코리아하우스 한국의 날 행사' 등에서 체육회와 문체부의 첨예한 갈등이 수차례 목격됐다. 이 회장은 선수들이 최고의 성적을 달성한 시점, 한국 체육의 미래를 위해 문체부와 협업하며 발맞춰나가야 하지 않겠냐는 질문에 "당연히 발은 맞춰야 하지만 문체부가 현장을 존중해야 한다. 가장 큰 이슈는 현장 존중이다. 섬기는 자세를 이야기하고 싶다"는 말로 에둘러 불만을 드러냈다. 11일 파리올림픽 폐회식에 정부를 대표해 참석한 송윤석 체육협력관(국장)이 이 회장을 면담한 자리에서 해단식 일정을 협의했고 이 회장은 "공항 해단식에 문체부 장, 차관 모두 오지 말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대한민국 선수단이 엘리트 체육의 위기를 딛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상황, 유인촌 문체부 장관과 '올림픽 역도 레전드' 출신으로 파리올림픽 현장을 함께했던 장미란 차관은 선수들을 축하하고자 공항을 향했다. 대통령실도 "정부를 대표해 장관, 차관이 선수단을 잘 격려해주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입국장으로 들어서기 전 이기흥 회장은 선수단과 각 종목 지도자 대표, 선수들에게 "이제 나가면 환영객들이 아주 많이 와 있다. 성적 보고, 단기 반납 후 해단식이 끝난다. 언론에서 취재 요청을 하면 개별적으로 알아서 하면 된다. 장소가 좁고 사람이 많으니 신속하게 진행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어 장재근 총감독(진천선수촌장)도 "행사 끝나고 종목별 인터뷰, 개인 인터뷰를 각자 진행하시면 된다. 5분간 해단식만 같이 움직여주시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지하 그레이트홀에서 대기하던 유인촌 문체부 장관이 "파리에서 고생한 우리 선수단이 들어오는데 내가 여기서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 것같다. 우리 선수들을 직접 맞아야겠다"며 메달리스트들과 함께 입국장으로 이동하면서 대한체육회-문체부가 함께하는 해단식이 전격 성사됐다. 해단식에서 유 장관과 장 차관의 역할은 없었지만 힘차게 박수를 치고 우렁차게 파이팅을 외치며 선수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유 장관이 이기흥 회장에게 "수고했다"며 손을 잡고 어깨를 두드리고 포옹하면서 '따로국밥'이 될 뻔한 해단식은 웃프지만 짧고 훈훈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다.
그레이트홀 해단식은 무산됐지만 박혜정(역도), 박태준(태권도), 성승민(근대5종) 등 이날 귀국한 메달리스트들이 협회별로 인터뷰를 진행한 후 귀가했다. 이날 대한체육회와 각 협회의 요청으로 꿀맛 휴식 중 해단식에 달려온 메달리스트들은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사진을 찍은 후 공항을 빠져나갔다.
해단식 축소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대한체육회는 14일 보도자료를 내고 "행사 장소를 처음부터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인천공항) 제2터미널 1층 입국장'으로 해 공식적으로 협조 공문을 인천공항에 요청한 바 있다. 최근 수년간 국제종합경기대회 귀국 관련 행사는 인천국제공항공사 입국장에서 개최됐고 이번 해단식도 동일한 장소에서 진행하고자 한 것"이라면서 "인천공항에서 제안한 별도 행사 장소는 선수단의 장기간 비행시간, 항공연착 및 수화물 수취 시간 소요 등으로 인한 선수단의 피로와 행사장소 이동에 따른 혼잡, 안전 등을 고려해 부득이 당초 계획된 입국장에서 행사를 축소해 진행하게 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현장을 함께한 한 선수는 "유 장관님과 이기흥 회장님이 악수하는 모습이 코미디"라는 촌철살인 한마디를 남겼다. 아이들이 부모의 불화를 알고도 모른 척하듯, 선수들은 모든 걸 다 알고 있다. 해단식을 위해 공항으로 한달음에 달려온 한 메달리스트는 "우린 뭐 상관없다. 해단식 하러 왔는데 선후배들 만나 서로 축하해주고 위로해주고 했으니 됐다. 어쩔 수 없다. (선수들은 이런 일을)다 그러려니 한다"고 했다. 1년을 넘게 이어져온 '어른 싸움'에도 아랑곳 않고 금메달 5개 목표를 훌쩍 넘겨 금메달 13개를 휩쓴 '멘탈갑' 대한민국 국가대표들은 초연했다. 같은 날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자국 올림픽 메달리스트 66명을 총리관저로 초청해 "노력이 있으니 인생이 있다"는 말로 '올림픽 세계 3위' 역대 최다메달 45개의 성과를 축하했다. 부끄러움과 미안함은 언제나 우리들의 몫이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