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프로의 벽은 높았다. 패기만만했던 신인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2군을 겪고 돌아왔다.
하지만 걱정없다. '수원 형'이 있기 때문이다.
11일 수원에서 만난 KT 위즈 원상현은 "2군에 있을 때 매일 쿠에바스와 영상통화 했다"고 했다. 옆의 이연준 통역이 "원상현은 쿠에바스 말고도 벤자민, 로하스와도 자주 영상통화를 하더라"고 거들고 나섰다.
원상현은 영어를 잘하는 걸까. 그는 "번역기를 쓴다"며 멋쩍어했다. 그때 쿠에바스가 "너 잉글리시 잘해? 안 좋아(못해)?"라며 눈을 동그랗게 뜬 뒤 "우리 한국말, 한국말"이라며 씨익 웃었다. 원상현도 "제 멘토"라며 쿠에바스의 품에 안겼다.
한국 생활 6년차, 어지간한 의사소통은 다 가능하다는 쿠에바스다. 마음가짐부터 공 던지는 방법까지, 투수로서 가져야할 여러 덕목에 대해 원상현에게 '밀착 지도'하고 있다.
5년차인 로하스, 3년차 벤자민도 역시 한국말이 꽤 자연스럽다고. 인터뷰 도중 "안녕하십니까!"라는 굵은 목소리의 인삿말이 들려 돌아보니 로하스였다. 동료에게 장난을 치던 로하스는 '아프다'는 반응에 "오! 미안합니다!"라며 넉살 좋게 웃었다.
원상현은 올해 1라운드 7순위로 KT 유니폼을 입었다. 시즌 전 이강철 KT 감독이 꼽은 5선발이었지만, 2군 생활을 경험해야했다.
무엇보다 선발투수의 스트레스로 살이 무섭게 빠진 게 원인이었다. 원체 늘씬한 체형인데, 체중이 더 줄면서 공의 구위도 떨어졌다. 건강 역시 좋을 리 없었다. 결국 2달 가량 재정비를 거쳤다.
이젠 불펜 롱맨으로 뛴다. 10일 수원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8~9회를 무실점으로 잘 막았다. 삼진도 3개나 잡아냈다.
경기전 이강철 KT 감독은 "어제의 수확이다. 5~6점차 이길 때, 또 1~2점차 지고 있을 때 (원)상현이가 저렇게 던져준다면 무척 고마운 일"이라며 "선발로 뛰던 선수라 멀티이닝도 가능하다. 투수 운용이 한결 편해질 수 있다. 어제 같은 경기에 (필승조)김민을 쓸 순 없지 않나"라고 설명했다.
"결정구가 좋다. 2스트라이크만 선점하면 삼진 잡을 능력은 있다. 다시 선발로 가기보단 중간에서 강한 직구로 1~2이닝을 책임져주면 좋겠다."
원상현은 2군에서 체중을 제법 불렸다. 이강철 감독은 "유니폼을 좀 헐렁하게 입으라고 말하고 싶은데…나보고 '구식'이라고 할까봐"라며 "타이트하니까 너무 말라보인다. 식사할 때는 무슨 군대마냥 엄청나게 먹는데, 살이 안 찌는 체질인 것 같다. 그래도 요즘은 좀 낫다"며 웃었다.
"살이 좀 붙어야 공에 힘이 실린다. 메커니즘 면에서 좋다. 그래도 팔 스윙이 빠르니까 150㎞ 넘게 던지지만, 볼이 너무 가볍고 무브먼트가 좀 아쉽다. 그래서 투심을 던져보라고 했다. 김민처럼 투심이 잘 어울리는 투수다. 지금은 몸이 좀 약하다. "
그나마 원상현은 체중을 72㎏에서 80㎏로 늘렸다. 식사량을 늘린 덕분이다. 쿠에바스는 진지한 얼굴로 원상현을 향해 "살 쪄야한다. 그래야 더 잘할 수 있다. 1년차 스트레스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며 다정한 조언을 건넸다.
이날 쿠에바스는 KT 농구팀 저지 차림으로 인터뷰에 임했다. 그는 "시간날 때 파리올림픽도 챙겨봤다. 농구? 물론 봤다"고 했다. '잘 어울린다'는 말에 환한 미소로 답했다.
수원=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