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아무도 예상 못한 이번 파리올림픽 대반전의 중심에는 'Z세대(1990년대 중반~2010년대 출생자)'가 있다. 한국이 이번 대회에서 기록한 13개의 금메달을 딴 선수들의 평균 나이는 24세에 불과하다. 30대는 펜싱 남자 사브르 구본길(35·국민체육진흥공단)과 남자 양궁 김우진(32·청주시청), 여자 양궁 전훈영(30·인천시청) 셋 뿐이다. 나머지는 전부 20대 이하다. 여자 양궁 3관왕을 차지한 임시현, 여자 사격의 양지인(이상 21·한국체대), 여자 배드민턴 안세영(22·삼성생명), 남자 태권도 58㎏급 박태준(20·경희대) 등 20대 초반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심지어 10대도 있다. 여자 10m 공기소총의 반효진(대구체고)은 만 16세10개월18일의 나이에 금메달을 따내며, 역대 한국 선수 하계올림픽 최연소 금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렸다. 여자 양궁의 남수현(19·순천시청), 여자 사격의 오예진(19·IBK사격단)도 10대 파워를 제대로 보여줬다. 3년 전 도쿄대회(27.1세) 보다 훨씬 젊은 23.9세의 우리 선수단은 생기있고 발랄하며 당당하게 파리올림픽을 자신들의 무대로 만들었다.
당당한 Z세대는 거침없이 세계무대에 도전했다. "질 자신이 없었다. 내가 어떤 놈인지 보여주고 싶었다"는 펜싱 남자 사브르 대표팀의 도경동(25·국군체육부대)의 말은 Z세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도경동은 헝가리와의 단체전 결승전에서 교체 투입돼 5연속 득점(무실점)이라는 완벽한 경기력으로 '신스틸러'가 됐다. 앞서 경기에서 뛰지 못하며 "몸이 근질근질했다"는 도경동은 실력으로 자신감을 입증했다.
반효진은 노트북에 '어차피 이 세계 짱은 나'라는 메모를 붙이고 다녔다. "오늘의 운세를 봤는데 '모두가 나를 인정하는 날'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의 날이구나' 싶었다"고 한 반효진은 한국의 하계 올림픽 통산 100번째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사격 여자 10m 공기권총 금메달리스트인 오예진은 "제가 메달 유력 후보가 아니라고 해도 신경 안 썼다. 그냥 순간을 즐겼다"고 자신있게 방아쇠를 당겼다.
Z세대에게 한계는 없었다. "세계랭킹은 숫자에 불과하다"는 태권도 여자 57㎏급 금메달리스트 김유진(24·울산광역시체육회)이 대표적이다. 세계랭킹 24위였던 김유진은 세계랭킹 5위→4위→1위→2위를 차례로 제압하며 금메달을 손에 넣었다. 김유진은 "과정을 돌아보면서 '내가 이까짓 거 못하겠어?'하는 생각을 했다. 너무 힘들게 준비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자신이 있었다"고 했다. 박태준도 '난 된다', '난 될 수밖에 없다', '난 반드시 해낸다', '이까짓 일로 죽기야 하겠냐' 등의 말을 되내이며 멘털을 끌어올렸다. 박태준은 한국 태권도의 한이었던 58㎏급 금메달을 획득했다.
Z세대의 화두는 '공정'이다. '누가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Z세대 태극전사들은 "가장 실력 좋은 선수"라고 답한다. "어떻게 해요. 뽑혔는데"라고 한 양궁 여자 대표팀의 맏언니, 전훈영의 말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국제대회 경험이 부족하다'는 우려를 잘 알고 있었다는 전훈영은 "짧지 않은 선발전, 평가전을 다 내가 뚫고 들어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올림픽 메달보다 국가대표가 되기 더 어렵다'는 양궁 국가대표 선발전을 뚫고 들어온 전훈영은 누구보다 훌륭한 궁사였고, 그는 단체전 결승의 우승 주역이 됐다. 양궁 뿐만 아니라 사격, 펜싱 등 공정한 선발전을 진행한 종목들이 큰 성과를 거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무엇보다 Z세대는 경기를 즐긴다. 과정이 좋았다면 결과는 그 다음이다. 설령 좋지 못한 성과를 냈더라도, 다음을 기약한다. 석연찮은 판정 끝 은메달을 거머쥔 유도의 허미미(22·경북체육회)는 "경기 일부니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였다. 그는 누구보다 기쁘게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쉽게 메달 획득에 실패한 스포츠클라이밍의 서채현(20·서울특별시청)은 "아쉽긴 하지만 후련하다. 충분히 무대를 즐겼다"며 웃었다.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낸 수영의 황선우(21·강원특별자치도청)는 "다시 준비할 힘을 얻었다"고 했고, 기대했던 메달을 따지 못한 높이뛰기의 우상혁(28·용인시청)은 "LA올림픽 도전을 위한 마음의 불꽃을 얻었다"며 좌절하지 않았다.
Z세대는 이번 올림픽을 통해 스포츠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올랐다. 공정을 중심으로 한계를 긋지 않고, 당당히 맞서며 과정을 즐기는 Z세대의 모습은 대한민국에 새 희망을 제시했다. 파리(프랑스)=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